제48집: 수난의 길과 해방운동 1971년 09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1 Search Speeches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 인간은 외적 하나님"

자,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를 보면 상하 관계지요? 아버지가 높으냐, 아들이 높으냐 할 때 누가 높아요?「아버지요」 그것을 물으면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아버지가 높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가 높다고 했으니 아들은 낮은 게 아니예요? 그러면 높은 자하고 낮은 자하고는 사랑할 수 없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을 인간하고 사랑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사랑할 수 있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높은 분이고, 인간은 낮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보다도 높고 아들은 낮다는 거예요. 아들이 월 알아요? 금방 낳아 놓으면 핏덩이인데…. 갓낳았을 때에는 원숭이 새끼가 도리어 더 곱다구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머니도 '흐흥', 아버지도 '흐흥' 한다는 거예요.

자, 높은 사람하고 낮은 사람하고 하나될 수 있어요, 없어요? 주종관계가 될 때에는, 상하관계가 될 때에는 보라구요. 사람의 욕심은 아래를 좋아해요, 꼭대기를 좋아해요?「꼭대기요」 꼭대기를 좋아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라도 올라가겠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그것을 염려했던 거예요. 사람의 욕망을 이토록 높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보다 더 높을 수 있으면…' 거기서 타락한 거예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 상투는 없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냐? 하나님보다도 자식이 더 높아지겠다고 할 때 하나님이 '야! 이 녀석아.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이놈의 자식아' 이랬다 가는 하나님 가정에도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안 그래요? 하나님 가정에도 하나님하고 아들하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언제나 아버지는 위이고 난 아래면 싫소'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렇게 되면 하나님도 곤란할 거라구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상까지 생각해 가지고 인간을 지었다는 거예요. 자신의 창조성과 이상성까지 완전히 투입했기 때문에 인간이 불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대해서 무엇까지 생각했느냐 하면 내외 관계까지, 좌우 관계까지 생각했다는 거예요. '얘야, 내가 위도 아니고 네가 아래도 아니다. 너하고 안팎 관계다' 알겠어요? 여기까치 생각했다는 거예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안팎 관계라구요.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그렇게 했느냐? 안팎 관계, 상하 관계로서 모순, 상충이 없이 언제나 원만하게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사랑 외에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권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권위 가지고는 안 돼요. 그것은 대번에 깨진다는 거예요.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느냐? 너는 밖이고 나는 안이라는 거예요. 그 말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내적 하나님이요, 사람은 보이는 외적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기분 좋지요? 생각해 보세요. '인간은 보이는 외적 하나님이다' 한번 그래 봤어요? 통일교회 문선생 말을 빌려 얘기하게 된다면 '하나님, 높으신 당신도 내가 없으면 높다고 못 하오리다. 나는 외적인 하나님이다' 한번 그래 봤어요?

기성교회 목사들을 보게 되면, 언제나 주눅이 들어 가지고 '어이쿠 하나님 ! 저희는 죄인이옵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그저 죄인, 종…. 거 기성 교회 목사였던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 그런걸. 종, 종…. 거 무슨 뗑그렁뗑그렁하는 종(鐘)이예요? (웃음) 그래, 일생 동안 허리가 구부러지고 늙어 죽도록 믿어 나오면서 겨우 종이 되기를 바라요? 되든 안 되든 아들이 되기를 한번 바라 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