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집: 우리의 책임 1972년 06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3 Search Speeches

6천년의 심정을 이어받아 뜻을 이루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 우리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오늘이 6월 초하루인데, 2차 7년노정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이 3년간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해야 되니나? 예수의 해원성사를 해야 됩니다. 이 3년 기간은 예수님 해원성사의 기간이요, 하나님 해원성사의 기간입니다. 십자가에 내가던 예수, 유대교를 잊어버렸던 예수, 이스라엘 나라를 잊어버렸던 예수의 슬픔을 해원성사하기 위한 이 기간과 맞먹는 것이 2차 7년노정이라구요. 그러므로 그것을 이 땅 위에서 이 민족과 수많은 기독교를 중심삼고 재현해 가지고 예수의 책임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할 이번 기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외적인 것이 되었더라도 내적으로 성립되지 않으면, 외적인 것도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불원한 장래에 사람들이 많이 올 텐데 여러분들의 그런 생활 모습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본부에 있는 할머니들도 다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가만 안 둔다고요. 나이 많은 사람들 전부 다 아주 안 돼먹었다구요. 들어와 가지고 본(本)이 되지 못하면 스스로 물러가야 됩니다. 자기가 본부에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물러가야 된다구요, 쫓겨나지 말고 그 누구든지 맛있는 거나 먹으면 '헤헤' 하고 좋은 거나 있으면 '헤헤' 하고…. 주둥이나 끌고 다니면서 좋은 것이나 얻어먹겠다고 하고, 몸뚱이를 끌고 다니면서 대접이나 받겠다고 하면 망해요. 내가 그러한 무리를 만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36가정이면 36가정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36가정의 권위를 알아달라고 생각하는 무리가 있다면 이것은 36가정 전체 책임이라는 거예요. 눈물을 흘려도 누구보다 많이 흘리고, 노력을 해도 누구보다 많이 해야 됩니다.

지금 통일교회를 위해서 진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남자 녀석들 가운데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 아니냐? 선생님이 지금 어떠한 입장에서 뒤넘이쳐 가고 있는지 생각하는 녀석이 없다고요. 뭐, 그것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라구요.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지금은 때가 때이니만큼 안팎으로 정비할 때가 아니냐는 겁니다.

이러한 것을 알아 가지고 본부에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새로운…. 여러분은 지방에 나가 활동하는 기동대와 전도대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구요. 일년 열두 달이 가도 '전도대원 나가면 뭐 하느냐? 하며 어떻게 되어 가는지 교회가 발전하는지, 전도대원들이 굶는지 사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는 데서는 뜻의 성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잃어버린 이상의 관심을 갖고 출발하는 것이 종교의 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이 협회장에서부터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은 무슨 사무를 보거나 직장에서 자기 책임을 정해서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요. 그 책임이라는 것은 6천년의 심정을 이어받아 가지고 뜻을 이루어야 할 책임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내적인 사연을 해결하는 자리에서, 그런 기반 밑에서 나는 나홀로 있지 않다고 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나가야 되겠어요. 더우기 6월 초하루, 이달에 있어서는 그러한 문제들을 청산짓고, 이 1972년도에 있어서 6수를 넘어 가지고 7수를 맞이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책임은 어디서부터냐? 내정적 심정에서부터입니다. 여기가 아담이 타락할 때의 슬픔의 자리,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갈 때의 슬픔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 2대 슬픔이 하나님의 심정에 못박는 슬픔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무슨 기독교에 있어서 순교니 하는 것은 이것에 비하면 문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후손된 우리들이 이것을 탕감하여 해원성사해 드리지 않고는 해방의 터전이 나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요.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그런 면에 주력해 가지고, 앞으로 협회장으로부터 전체 책임자들은 기도 시간을 중요시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내정적 심정문제를 보다 중요시하고, 또 교회가 그런 면에서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