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누가 골고다의 친구가 될 것인가 1958년 10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46 Search Speeches

골고다의 친구가 되어야 했던 베"로와 12제자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기독교적으로 보면, 그것들은 역사의 결론적인 현상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결론을 맞추기 위하여 어떠한 역사과정을 거쳐 왔는 가를 기도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아버지여! 이 민족이 택한 민족으로서 세계의 복을 받게 하시옵소서. 유대교를 심판하시옵고 불신의 반열을 심판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이것이 예수가 겪으셨던 사정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죽을 때 품은 그 분함은 무엇이었던가. 택한 유대교가 예수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택하신 백성들이 예수를 못박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분하고 원통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슬픔이 컸지만 4천년 동안 피눈물의 제단을 쌓는 과정을 걸어오신 하나님의 사정을 생각하고, 4천년 동안 택하여 길러오셨던 유대백성이었음을 생각하게 될 때, 자신의 죽음도 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의 정신을 오늘날 흩어져 있는 세계기독교인들은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예수가 손을 들어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유대 나라가 먼저 심판을 받았을 것이요, 유대교인이 먼저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늘이 여유의 과정을 남겨 놓아야 죽어가는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 넘어올 것을 바라서 복을 주고 가신 예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이 오른편 강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서럽고 서럽습니다. 4천년의 하나님의 슬픔이 여기에 있는 것을 몰랐던 민족……. 이건 슬픈 장면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예수님 앞에 그저 널려져 있는 수많은 민중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에 같이 동하고 정하여야 할 무리가 바로 유대교인이고 유대백성이어야 했는 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피를 같이 흘려야 할것인데 오히려 여기에 살인강도가 동반한 것이 웬말인가.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로되 불쌍한 구주였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동반자가 살인강도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지극히 민망한 사실입니다.

골고다의 친구가 베드로가 되었던들, 12제자가 되었던들, 하늘의 한은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되었으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12제자가 단결해서 예수님의 죽음에 같이 죽고자 했으면 기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안 죽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3년동안 택한 민족을 바라보고 서러워하시던 예수, 3년 공생애 기간에 이 땅의 인류를 위해 우시던 예수, 그 예수에 소망을 걸었던 민족은 어디 갔던가? 바라보고 있던 교회는 어디 갔던가? 3년 공생애 기간에 희노애락을 같이하며 따랐던 제자들은 어디 갔던가. 그들은 자신이 좋고 즐거울 때는 , 나는 예수의 친구요 예수의 제자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보다 예수의 입장에 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 예수의 가는 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입장에 처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새로운 역사의 출발의 뿌리가 되어 그러한 모양으로 역사는 발전되어 오늘의 끝날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복을 누가 받았느냐. 따르고 있던 12제자도 아니요, 하늘을 믿고 있던 유대교인도 아니요, 축복을 하여 택해 세운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같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간 오른편 강도가 역사적인 축복을 받아가지고 수제자보다 먼저 낙원에 임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만일에 살인강도 중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죽음의 날에 동참을 하지 않았던들 구원섭리는 좌절되었다는 것입니다. 살인강도의 뿌려진 피가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지상에서 복지 낙원을 건설하는 조건을 천운과 더불어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땅 위에 다시 나타나 불신했던 백성을 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한분을 죽음의 자리에서 신랑으로 맞이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 터전으로 말미암아 선의 열매가 반드시 지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대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선을 치는 데 있어서 그 선의 씨알맹이까지 쳐서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을 위한 희생과 죽음의 자리에서 설 뿐만 아니차 그 선을 붙들고 쓰러지는 충절의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 쓰러진 그 한 자체로 말미암아 몇배로 선이 번식되어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철칙입니다.

그 당시 반대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면 망할 줄 알았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사탄권에서 다 빼앗은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오른편 강도를 조건으로 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킨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