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집: 위하여 사는 정신 1990년 07월 07일, 한국 본부교회 Page #49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사'의 대상

어디에 그 기반을 닦을 것이냐? 여러분의 가정이예요, 나라예요, 세계예요? 여러분의 눈동자예요? 어디예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기반을 잘 닦는다고 하더라도 심신일체권을 이루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예요? 사랑의 핵이 정착하는 데입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해요. 심신일체화된 경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거예요. 일단 그 정착기준이 설정되면 하나님의 심정권이 연결돼요. 절대적 수직 기준과 심신일체권이 결속되는 데가 그곳입니다.

요전에 선생님이 전국 순회를 하면서 강연한 내용이 그거예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어디에서 정착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이 있지요? 남자도 사랑이 있지요? 여자도 사랑을 가지고 있어요. 그 사랑은 어디에서 현현하느냐? 완전한 대상권을 이루는 데에 사랑의 힘이 움직이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존재는 무엇일 것이냐? 남자 혼자면 어떻게 돼요? 정착해요? 그 대상이 남자일 경우에는 여자가 투덜투덜합니다. 여자가 되면 남자가 투덜거려요. 남자도 여자도 모두 찬성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런 기준의 결착점이 도대체 어디냐?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 가운데 다 뒤져 보고 찾아낸 것이, 참사랑은 직단거리로 통한다는 거예요. 이것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참사랑은 직단거리로 통합니다. `수직' 할 때 쓰는 직(直), `단점' 할 때 쓰는 단(短), 직단거리입니다. `곧을 직' `짧을 단', 직단거리. 선생님의 이 말을 듣고 여러분은 `아, 그거…'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깊이 파고들어가 결론을 찾으려고 하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각도가 틀리면 어떻게 돼요? 이것이 영원히 이동해 버리면 어떻게 해요? 정착기준이 빗나가 버리는 거예요.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정착지가 어디예요? 그게 문제입니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찾아내야 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이 발견이 위대하다는 거예요.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알겠지요?

모든 것이 직단거리로 내려오는 것에 대해서 수평이 되어야 돼요. 수평은 90도가 돼요. 75도면 금방 갈라지게 돼요. 75도에서는 어느 쪽이든지 기울게 돼요. 그렇지만 수직은 변하지 않아요. 수평이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해서 맞추는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수직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에 통하기 위해서는 인간 자신이 사랑의 도수를 맞추는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한테 아무리 `아, 내 소원을 이루어 주소' 하고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아요. 하나님의 완성노정은 수직을 통해서 연결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해 15도나 75도의 각도에 있어서는 아무리 부르짖는다고 하더라도 그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없는 하나님의 입장임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의 양심(良心)과 육심(肉心)은 어때요? 양심이 수직이라면 육심은 수평이예요. 그렇지요? 양심이 바르다 하지요? 무엇이든지 바르다고 하는 것은 이런 수직을 말하는 거예요. `아, 저 나무는 똑바르다' 할 때 그 자체는 수직입니다.

양심이 바르다, 행동이 바르다, 심신일체권을 이루고 있다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말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행동만 가지고도 안 돼요. 심신일체권의 결착점은 어디냐? 이거 심각한 거예요. `우선 90도가 되라. 90도가 되는 데는 모든 세상 가운데 수평으로서 중심이 될 수 있는 기준을 세워라. 서양에 가더라도, 동양에 가더라도 연결될 수 있는 표준적인 인간이 되어라. 그래서 역사적으로 현재와 미래를 통해서 보더라도 그것은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된다' 이게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