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남겨진 아버지의 사랑을 소유하는 자가 되자 1958년 10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2 Search Speeches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과 소망과 사'의 실체

그러면 우리가 관계의 세계를 통하여 절대자로서 실존하는 하나님을 헤아려보아 그 하나님의 실존을 부정할 수 없다 할진대는 , 그 하나님도 역시 우리와 같은 생명력의 움직임을 갖고 있고, 이념적인 움직임과 정적인 움직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로 말미암아 태어나고 그의 이상적인 존재로 지음받은 우리이기 때문에 그가 갖고 있는 전체적인 모든 속성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러면 하나님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실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 자체 앞에 생명의 주체로 나타나야 할텐데 안 나타나고, 소망의 주체로 나타나야 할텐데 안 나타나고, 사랑의 주체로 나타나야 할텐데 안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탄식이요 인간의 서러움인 것입니다.

이것을 대신해 주고 보충해 주기 위해서, 이 곡절을 풀어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 고충을 해명해 주기 위해 이념의 주체가 되는 실체, 정의 주체가 되는 실체, 생명력의 주체가 되는 실체를 보내 주셨는 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실체로 계시지만 그 관념의 세계에 있어서 직관적인 어떤 우주관이 있을 것이고, 직감적인 동시에 직각적으로 느끼는 원칙의 세계를 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생명권은 무엇을 통하여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과학도 아니요, 철학도 아니요, 인간의 어떤 지적분야에서 느낄 수 있는 사실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하여 이것을 해명지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종교를 세워 관계와 인연을 중심삼고 인간의 마음의 터전을 움직여 가지고 하나님, 즉 절대자의 동기와 목적을 해명시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기와 목적을 해명시키는 데는 논리적인 설명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힘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념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으나 논리적으로 이념 그 자체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듯이, 사랑 그 자체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생명에 대한 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생명관, 역사관, 종교관, 무슨 관 등을 세우려 하지만 세울 수 없고 사랑을 대해서도 어떤 관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은 어떠한 관이라는 것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는 상대적인 기준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상대적인 기준을 가질 수 있을 만한 해명의 조건을 찾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관보다도 앞서는 , 그 무엇이라도 해명할 수 있는 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직관이라는 명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직관 또는 직감이라는 말 혹은 직각이라는 말, 이것은 오늘날 오관을 통하는 인식의 세계에서 해명할 수 없는 문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직관, 직감, 직각이라는 것은 어디를 통하여 움직이고 느껴지는 것인가? 외부로부터 오관을 통하여 느껴지는 감각과 느낌이 아니라 마음을 통하여 들어오는 감각과 느낌인 것입니다. 그 직관적인 감각은 시간을 초월하여 순식간에 원인과 동기를 해명할 수 있는 것으로서 어떤 실존적인 존재성을 느낄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그러한 문제를 우리들의 마음을 위주하고 풀 수 있습니다. 즉 초자연적이고 법칙적인 어떤 직관 또는 느낌을 통해서만이 이를 해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인연과 관계의 문제로 되어 있고, 이 관계와 인연은 또 어떤 동기로부터 목적을 향하는 과정에 머물러 있는 데, 그 과정에는 역사성이 내포되어 있고, 시대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미래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모든 느낌을 오늘날 우리는 종교를 통하여 체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체득한 그것이 하나님이 갖고 있는 생명의 속성, 이념의 속성 또는 사랑의 속성과 같은 그러한 힘의 자극을 여러분 자체에 일으켜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종교라야만이 오늘날 우리들이 믿을 수 있는 종교일 것입니다.

그러한 종교를 오늘날 우리들은 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관계의 성향을 통하여 논한다는 입장에 서서 보게 될 때, 틀림없이 그러한 종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체득해야 할 것이냐 하는 , 이것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