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두 세계를 대하고 있는 나 1959년 09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3 Search Speeches

천심과 인심의 입장-서 본 인간의 타락

우리는 흔히 사람은 마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심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천심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심과 천심에 상응하고 천륜의 법도와 그 질서를 가지고 자신의 생활을 밝히는 인간이 되어야 할 터인데, 인심과 천심이 합한 생활적인 기준을 밝힐 수 있는 질서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타락이요 탄식입니다.

인심을 떠나고 또 여기에 하늘이나 선한 양심을 배반하는 것을 악심 혹은 물심이라고 우리는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나 하나를 놓고 볼 때, 마음을 중심삼고는 천심이 나에게 들어오고, 또 몸을 중심삼고는 악심이 나에게 스며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고이래로 모든 성인 현철들이 이 와중에 있는 자기를 보고 탄식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바울도 마음의 법과 몸의 법이 싸우는 와중에 있었기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즐기며 살아 나오고 또 살려고 하는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내 마음과 몸이 즐거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못 되어 있고 내 마음의 이념과 화할 수 있는 세상이 못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고민하고 허덕이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것을 헤아려 보게 될 때에, 천심이 인심을 움직여야 할 원칙이 있는데도 진정 이 천심을 오늘날까지 우리의 진정한 인심과 짝하여 생활에 나타나거나 우리 일생의 노정을 거치는 동안 즐거움으로 나타난 순간이 한번도 없었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늘이 있다 할진대 우리의 마음을 중심삼고 하루만 살고 싶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중심삼고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과 몸이 싸우는, 이 와중에 처하고 있는 내 한 자신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중심삼고 하늘이 살 수 있느냐고 묻게 될 때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선입니다. 선은 영원이요 유일이요 불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변이요 유일이요 영원한 생활관념을 못 가졌기 때문에 선을 향하여 움직여 나가는 그 마음에 끊임없이 돌입할 수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늘은 우리 양심을 통하여서는 작용할 수 있으되, 우리의 생활관, 생애관에는 작용하실 수 없습니다. 우주적인 이념 밑에서 우리 인간을 끌 수 없었던 연고로 지금까지의 역사는 악의 주관 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는 천륜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세계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심판받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도 역시 심판받아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