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집: 가야 할 험한 길 1969년 11월 0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7 Search Speeches

자기를 왜 존'시하고 절대시하느냐

자기에게 있어서 제일 가까운 것은 무엇입니까? 상대적 요건으로는 부모와 처자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은 물질의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가족과 물질을 비교해 볼 때 물질보다는 가족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가족을 버릴 것이냐 물질을 버릴 것이냐라고 할 때, 지금까지의 인륜도덕의 관념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든지 가족을 위해서 물질을 버리는 것을 상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있어서 제일 가까운 것이 가족이냐, 자기 자신이냐 할 때에는 가족이 아니라 자기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가정을 두고 볼 때, 제일 귀한 것 하나만을 취해야 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가정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세계를 축소시킨 횡적인 기반입니다. 여기서부터 국가와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무엇이냐? 가정은 세계의 횡적인 축소형으로 절대적인 중심 앞에 상대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이냐? 절대적인 중심이 머무를 수 있는 발판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어머니를 찾는 데 누구 때문에 찾느냐? 어머니 때문에 찾는 것입니까? 어려운 상황에서 어머니를 찾고 그것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 때문이냐?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가 `나'입니다. 그러면 나를 왜 존중시하느냐? `나'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중심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그 중심존재 앞에 절대적인 상대형입니다. 그 상대는 평면도상 위에 자리잡은 입장에서의 절대가 아닙니다. 입체적인 하늘 앞에 상대적인 존재로서의 절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 몸과 마음이 언제나 하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되었다가는 갈라지고 하나되었다가는 갈라지고 했던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떠하든지간에 자신을 존중시하는 것, 이것은 지금까지 인간들에게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아직까지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중심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선의 기준을 갖추어 그러한 관계를 맺어야 할 입장에 있는 나이기 때문에 자신을 존중시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길에 있기에 자타를 막론하고 자신을 존중시하고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절대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상대적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빨리 완전하게 갖추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하늘편 중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들어가는 데 있어 반대하는 것은 전부 다 끊어야 됩니다. 물질이 반대하면 물질을 끊어야 되고 세계가 반대하면 세계를 끊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펼쳐 나오신 이러한 상대적 기준을 타락으로 말미암아 남자나 여자나 할 것없이 전부다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대적 기준을 갖추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필생의 욕구입니다. 죽을 고비에 있더라도 그 상대적 기준을 갖추어 놓고 죽어야 됩니다. 이러한 원인이 있기에 자기 자신을 절대시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