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집: 우리들이 해야 할 일 1962년 04월 1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7 Search Speeches

알고도 행하지 못하면 탄식은 "욱 크나니

이제 우리가 뜻을 알았을진대 아버지의 일을 아버지의 일로 남겨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저끄러 놓았으니 후손된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땅에서는 몰랐다가 저나라에 가서야 알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한 탄식도 크지만 알고도 행하지 못하면 탄식은 더욱 가중되는 것입니다.

크나큰 아버지의 일을 부디 여러분들만은 상속받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한 순간이라도 슬픔을 잊고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기쁨의 하나님이 되지 못하셨지만 그 일을 여러분이 대신하여 기쁨의 시간을 마련해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천상에 가서 아버지를 대할 면목이 서는 것입니다. 슬픈 일을 많이 남겨 놓고 어떻게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아버지를 대할 수도 없고 모실 수도 없습니다. 비록 책임할 수 있는 분야는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심정만은 삼천만을 넘어서 천하를 대할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바친 모든 충성은 이 땅에 뜻이 이루어질 때 우리를 거기에 갖다 놓아도 부끄럽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심정적인 면에서는 큰 일을 하는 사람이나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충성에 있어서는 누구의 것이나 같은 가치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작은 이는 작은 이대로 아버지께 충성을 바치어 기쁨을 함께했을 때 그것을 어디에 갖다 놓아도 기쁨의 조건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지역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쁨의 기준에서 볼 때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하고, `나의 기쁨인 동시에 당신의 기쁨이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소가 되고 지성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건을 갖고 아버지 앞에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인 하나님, 시대적인 하나님, 미래적인 하나님을 대신하여 남겨 주고 보여 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다 알았지만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터전, '아버님 받으시옵소서' 하고 바칠 수 있는 터전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의 일이자 내 일이요, 내 일이자 아버지의 일입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승리적인 터전을 만들고 이것을 점점 확대시켜서 하나님의 동산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동산입니다. 이제 이 땅에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내 개체가 행복해서는 안 됩니다. 내 개체를 바치어 하나님의 일을 다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도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머리를 둘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좋지만 나를 위시한 가정, 곧 영원한 하나님께 속하는 최소단위의 기준인 가정적인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복귀의 목적은 사위기대를 완결짓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승리의 조건을 제시한 후에 내가 안식할 수 있는 터전, 곧 가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합니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만족이나 행복 같은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에서 출발했습니다. 백두산을 올라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선지자와 도인이 왔다 갔지만 섭리적인 사명의 분담면에서 볼 때 허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만은 다르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6천년 섭리의 길에는 하나님께서 흘리신 피눈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피눈물의 흔적은 천상에도 남아 있고 지상에도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도 역사적인 과거와 시대적인 현재와 소망적인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