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인연의 행로 1972년 07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0 Search Speeches

선은 전체의 것

그렇다면 선은 어떤 것이냐? 선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데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하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데에서 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데에서 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루하루 천지만물을 지어 놓고, 그 만물을 대해 '보기에 좋은지라, 선한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기에 선한 지라' 한 그 선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내가 혼자 있으니 선하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피조물을 만들어 놓고, 그 피조 물을 바라보며 그것을 위하는 그 마음의 자세, 피조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자리에서 선하다는 역사적 전통이 세워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볼 때 선의 기원은 자기를 위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데서 설정되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할 때, 그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위해 가지고 환경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움직인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소화되어 가지고 환경을 움직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선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불교 믿는 사람들은 적선을 많이 말하고 자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선을 쌓으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남을 위해서 공을 세우는 데서 선이 쌓아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이 쌓여져 완전히 다 이루어지게 될 때 그 선은 상대의 것도 아니요, 주체의 것도 아닌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부부일심을 이루게 되면 그 부부는 남편만을 위한 것도 아니요, 아내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부부일심이 이루어지게 될 때 그것은 누구의 것이냐? 그 부부의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동시에 그 부부는 누구의 것이냐? 그것은 공적인 것입니다. 벌써 부부가 하나됐다고 하게될 때는 남편의 것도 아니요, 아내의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공적인 것입니다.

공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어떠한 환경이 주체자와 중심적인 내용을 결합시켜 가지고 그 중심이 움직이는 데에 완전히 보조를 맞추게 될때, 일치를 이루게 될 때에 거기에 선한 토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갑과 을, 둘이 하나될 때 갑이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혹은 을이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하나가 됐지만 그것은 갑의 것만도 아나요, 을의 것만도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둘의 것입니다. 이 둘의 것인 그선도 둘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체를 대표한, 전체의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이겁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완전한 행복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설정되느냐? 나 혼자만 행복해 가지고 행복이 설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둘다 행복하게 될 때 행복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둘다 행복한것은 어떤 것이냐? 보다 차원 높은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갑은 동쪽에서 왔고 을은 서쪽에서 왔으면 동서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될 때에 행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완전한 선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한 선이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인연을 따라오는 과정에 있어서 관계를 맺어 온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비로소 꽃을 피우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연을 통하여 보게 될 때 그것은 인연의 부활이요, 관계를 통하여 보게 될 때에, 하나의 결실로서 등장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가 행복한 자리요, 선한 자리라고 우리는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