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집: 체휼과 실천 1975년 02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9 Search Speeches

자기와 상대적인 소성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삼고 나가야

여러분이 원만한 인격을 지니려면, 춘하추동 사시계절 형태의 마음의 밭, 심전(心田)이 있으면 그 마음의 밭을 계발하려면, 그런 소성의 사람을 내가 친구로서 환영할 수 있는 자격자가 돼야 됩니다. '아이구! 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싫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싫은 사람이 나에게 제일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싫은 사람을 좋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악한 사람이 선하게 될 수 있는 첩경을 간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반드시 제일 싫은 사람이 있다구요. 반드시 있어야 돼요.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싫은 사람이 내게 있어서 원수가 아니예요. 나와 제일 가까울 수 있는 것입니다. 참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까울 수 있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로마 병정을 대해 기도한 것도 그거라구요. 로마 병정이 본래는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제일 먼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먼 원수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가까울 수 있는 입장에 세웠던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그 원수를 포괄해 가지고 제일의 친구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도 거기에 들어 있는 거예요.

오늘날의 이 사망의 세계는 원수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니 이 세상은 부정당해야 할 세상이라구요. 부정당해야 할 세상에 있어서 긍정적인 내 입장을 세우면 그것은 영원히 이 악한 세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돼요. 그렇지만 이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나옴으로 말미암아 자체를 부정하고 넘어설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어렵구만요, 무슨 말인지….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지적인 사람은 기도가 필요함과 동시에 뭐가 필요해요? 신령적인 사람은 지적인 면의 보강이 필요함과 동시에 뭐가 필요해요? 친구가 필요합니다. 혼자 하려면 상당히 어려워요. 그래서 여러분이 남의 간증을 듣고 경험을 듣는 것은 신앙생활에 지극히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거들랑 통일교회 간부들의 간증을 듣고 싶어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협회장은 어떻고, 누군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전부 다르다구요. 이런 것을 내가 상대로서 소화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도수가 넓어진다는 거예요. 도수가.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이 중앙선 아니면 이것은 길고 요것은 짧고, 전부 다르다는 거예요.

내 성격이 이러면, 짧은 이 면을 메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나오는 간증을 들으라는 거예요. 이것을 들어서 자기 것으로 흡수하라는 거예요. 보강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체험담을 들어라! 들어 가지고 남이 말한 그것을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비판하는 것은 사탄편이 되든가 하늘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하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비판했다 할 때는 사탄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갈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은 내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의 암이라는 거예요, 암. 사탄편이 됐던 녀석이 하나님편에 갈 수 없고 하나님편이 됐던 녀석이 사탄편에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 생활 있어서 가는 데에는 직행을 절대 못합니다. 지그재그로 간다는 거예요.

선조도 선한 선조만 있는 게 아니라 악한 선조들도 전부 다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내 자체가 소성적으로 볼 때 선한 선조의 소성을 많이 갖고 있을 때는 이렇게 가지만, 악한 선조의 소성을 받은 부분도 있다구요. 그런 때가 온다구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럴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하게 돼요. 비판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다 그런 이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거예요.

신령적인 면에 자기 소성이 맞는 사람들은 그저 영적인 것에 대해 궁금해요. 선생님 같은 사람은 본래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어요.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주 궁금하다구요. 밥을 안 먹고 24시간 동안 들어도 들을수록 재미난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그러면 그것을 일방적으로 하지 말고 진리로 보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면을 가려 가지고 가야 돼요. 자기의 소성, 자기가 어떠한 면의 사람인가는 각자가 알 거예요.

그러면 그 반대적인 면을 계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혹은 진리를 탐구하고 혹은 신령면에서 체휼하고 말이예요. 여기에는 반드시 뭐가 필요하냐 하면 기도와 진리 탐구가 필요합니다. 신령한 사람은 이미 영적으로 느낀 것을 진리로 소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되고, 진리적인 면의 사람은, 지성적인 면의 사람은 그 지성적인 면에 영적인, 신령적인 면을 보강할 수 있는 체휼적인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반드시 내가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터전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 혼자서는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와 상대적인 소성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스승으로 삼아서 지도를 받고 협조를 받아 나가는 것이 제일 바른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만약에 여러분이 그러한 것을 느꼈을 때는, '아! 이젠 나도 알았다' 할 때는 그 알았다 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라는 거예요. 실천하라는 거예요. 자기가 해봐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그렇잖아요? 실험을 해보고 말이예요. 전문가는 무엇이 전문가냐? 같은 일을 많이 해본 사람입니다. 전문가가 따로 있지 않다구요. 그렇잖아요? 기술자는 어떤 사람이 기술자냐? 같은 일을 많이 해본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실험을 해봐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