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한 많은 아버지를 모실 이 1959년 05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3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왕'의 왕이" "시아로 결정될 수 있-던 이유

예수는 어떤 자리에서 왕중의 왕으로 결정되었던고. 어떤 호화찬란한 왕궁의 보좌에 앉아서, 행복한 입장에서 만민 앞에 자랑하며 노래 부르는 자리에서 만왕의 왕으로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십자가 도상에서 역사적인 서러움과 인류의 서러움, 역사적인 고통과 인류의 고통을 붙들고 만민 앞에 하늘의 기쁨의 도화선이 되고자 하는 심정에 미친 자였습니다. 그러한 심정에 미친 자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만민을 구할 수 있는 구주가 되었고, 슬픈 천상의 역사노정에 뚜렷이 드러나는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늘이 걸어온 고통의 역사에 자랑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었고, 슬픈 역사노정 위에, 고통의 역사노정 위에 미래의 신앙역사에 나설 수 있는 왕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슬픈 역사노정을 거쳐간 수많은 영인들도 예수를 구주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될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왔다 갔지만 오늘 이 땅의 인간들이 그를 구주로 모시는 것도 그러한 까닭에서이며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소망을 성취하는 한 개체로 나타나서 신부가 되려 하는 자는 자기를 중심삼은 신앙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을 염려하고 하늘의 역사적인 근심을 품고 하늘의 역사적인 고통을 품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자기에게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쁨은 하늘것이요, 슬픔과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내것이라 할 수 있는 심정을 소유한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라야만이 천상을 지배할 수 있고 지옥까지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옥까지도 지배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들이 가져 왔던 신앙관념, 믿고 천국 가겠다는 신앙관념을 끊어 버리십시오. 내가 믿고 천국 가겠다는 신앙관념을 끊어 버리세요. 예수는 자신이 왕자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천국의 왕자라고 생각했으면 죽긴 왜 죽어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책임진 입장에서 '아버지여!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간구(懇求)의 말씀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인간들은 어떠한 마음을 가졌습니까? 자기들의 슬픔에 울고 자기들이 고통에 허덕이는 민족에게는 절망만이 있을 것이로되, 자신을 넘어 민족을 붙들고 세계를 붙들고 슬퍼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길로 재촉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이 이 한민족 앞에 나와야 됩니다. 하늘의 신앙 방편이 이 한민족 앞에 세워져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 통일용사의 심정, 통일용사의 정신을 품은 자는 , 그 심정에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 믿는 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믿는 것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더 나아가 지옥문을 개방하여 원한에 사무친 지옥의 영인들까지 구원하기 위하여 믿는 다는 심정……, 그런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심정을 품고 한 가지 일을 하면 그 일은 억천만 가지 일의 가치와 맞먹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랬기 때문에 역사적인 메시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배당을 출입하는 기독교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은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가는 걸음은 무엇을 위해 가고 있습니까? 자기 일개인의 생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움직이렵니까? 그러면 하늘의 아들 딸이 될 수 없습니다. 백성은 될 수 있을지 모르고 종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아들 딸이란 명사는 가질 수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