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최후의 한때와 나 1970년 03월 12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97 Search Speeches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을 '심한 하나님의 섭리"

이것은 아브라함을 중심삼고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데라의 아들을 세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실 때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생활환경에서 자라 많은 체험을 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까지 역사과정에 있었던 내정적 슬픔을 전부다 품고 오셔서 그 품은 한을 풀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의 수중에 있는 사랑하는 아들을 빼내 가지고 고향 산천을 버리고 갈대가 우르를 떠나라고 명하시어 애급노정을 걷게 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리는 그 순간은 아담이 타락한 후 2천년 기간의 수난의 역경을 거쳐오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복귀할 수 있는 소망의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리는 데에서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제 3차적인 복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하나님께 다시 못을 박는 원한을 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가 민족을 끌고 나오면서 수습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민족을 수습하기 위해 모세를 세웠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오면서 반석을 2타하여 실패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예수님이 올 때 먼저 세례요한을 보내 터를 닦게 하셨고,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오실 때 동방박사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동방박사를 보내신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한 나라의 대표자로 오시는 메시아 앞에 이방의 대표자로서 굴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세 사람의 동방박사가 예물을 드린 것은 3대 천사장이 하나님과 아담에게 굴복하지 못한 것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국경을 넘어 이런 원칙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국가 기준이 세계적 판도를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예물을 드렸지만 예수님께 필요한 것은 예물이 아니었습니다. 조건물로서의 예물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동방박사의 실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만일 그때 동방박사가 예수님과 뜻이 일치되어 가지고 유대 나라를 중심삼고 해롯 왕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장에 섰더라면 일차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정하여 국경을 넘게 한 동방박사들이 의인이 태어난 것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알리고 그들을 인도해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세상적으로 바라던 소원을 중심삼고 한때의 중간적인 사명자로서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자기 사명을 다한 줄로 생각했던 것이 역사적인 불행인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서 세 사람의 동방박사가 예수님과 일치되었더라면 국가를 넘어 천국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이러한 기준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사명을 다하실 수 있도록 준비된 환경을 갖추어 나갔더라면 예수님은 복귀의 한때를 맞았을 것인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수난의 길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는 예수님으로부터 떠났고 요셉 가정은 그를 불신했습니다. 그리하여 세례 요한에게 희망을 걸었으나 그도 책임 못함으로 인하여 예수님에게 교회적인 수난의 길이 전개되었습니다. 교회적인 수난의 길이 전개됨으로 말미암아 국가적 수난의 길이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요셉 가정에서 가정적인 기준이 일치되었더라면 세례 요한은 자동적으로 복귀 되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종족기준을 대표한 것과 마찬가지 입장이기 때문에 요셉 가정이 일치되어 나왔더라면 세례 요한은 자연히 환경을 넘어 수습되었을 것입니다. 혈통적으로도 세례 요한은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