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집: 역사적 전환점 1981년 11월 08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30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태어나기까지의 혈통복귀-사

본래는 아담가정에서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이 구원하려고 했는데, 아담 해와 가지고는 구원 못 한다 이겁니다. 타락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그 두 아들로 갈라지게 했어요. 이래서 복귀역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형님을 동생으로 끌어내리고 동생을 형님으로 끌어올리는 놀음인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구원섭리의 길이라는 것은 이렇게 역설적인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가인은 사탄편에 세워 놓고, 아벨은 하늘편에 세워 놓고 '너 아벨은 가인을 자연굴복시켜 가지고 장자의 기업을 싸우지 않고 기쁨으로 상속받고 와라' 한 거예요. 이게 가능해요? 거 얼마나 힘들어요? 여러분, 형제끼리도 집에서 말이예요, 돈 얼마씩 가지고 칼부림하고 싸움하는데, 이것은 우주를 걸어 놓고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담가정에서, 인간이 돌아가는 데는 반드시 이 모든 것을 청산하고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을 세워 가지고 가인과 대결하게 했던 것입니다. 요즘같이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가인과 대결하게 해 가지고…. 대결하는 데는 누가 먼저 권력행사를 하느냐 하면 형님이 권력행사를 해야 된다구요. 원리적으로 보면 동생은 형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형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형님 앞에 가 형님을 뒤집어 박으려고 생각한다 이겁니다. 그러니 원수와 같이 별의별 짓을 다 하는 거예요.

이러한 모순적 출발을 보았기 때문에 역사의 과정이 시정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싸움의 역사를 거듭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낳은 아들딸을 중심삼고 바꿔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여 버렸다 이거예요. 그래서 더 나아가 또 세워 가지고 역사시대를 거쳐서…. 가인 아벨 형제로 바꿔치기하다가 안 됐으니 역사 시대를 거쳐서 이삭과 야곱시대에 와 가지고 쌍동이를 통해서 한 겁니다. 서로 각각 나왔으니까 성질이 다르거든요. 그러나 쌍동이는 같다고 그러잖아요? 형님이 아프든가 동생이 아프든가 하게 되면 한쪽 편은 그걸 느낀다는 말이 있다구요. 그런 쌍동이를 통해서 바꿔치기 하자 이겁니다.

야곱이 팥죽을 중심삼고 장자의 기업을 산 성경 얘기를 보면 수수께끼 같고 꿈같은 이야기예요. 거 왜 해야 돼요? 뭐라고 할까요? 얄밉게도 세상에 그런 동생이 어디 있어요? 야곱같이 말이예요. 에서 형님에게서 장자의 기업을 빼앗기 위해서 팥죽 가지고 '장자기업을 팔아' 했다구요. 이래 가지고 몽땅 빼앗는 놀음을 했다구요. 그러면 하나님은 빼앗긴 에서를 동정해야지, 왜 야곱을 동정했겠어요? 이건 아무리 신학자들이 연구해도 모르는 거예요. 통일교회 원리를 모르면 모르는 거예요.

이래서 쌍동이를 통해 가지고 복귀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에서가 장자기업을 중심삼고 21년 동안 야곱을 죽이려고 하던 과정에, 야곱은 형님 마음을 사기 위해서 모든 걸 갖춘 거예요. 그래 가지고 외적인 것을 전부 다 줘 가지고, 물질적인 것을 전부 다 줘 가지고 영적인 것으로 바꿔친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천사하고 씨름해 가지고 이기고, 그다음엔 에서를 중심삼고, 자기는 종이라고 한 거예요. 여러분들 야곱이 에서를 만나는 데를 보라구요. 형님을 주(主)라고 찬양하면서 자기는 종이니 모든 것이 형님 것이라고 했다구요. 이래 가지고 그 자리에서 환영받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야곱이 지상에 정착, 토착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쌍동이로서 3, 40대에, 다 장성했을 때에 이 일을 했으니 복중시대는 아직까지 바꿔치지 않았다 이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다 아는 얘기지만 다말을 통해서 베레스와 세라…. 본래는 세라가 먼저 나오려고 했는데, 복중에서 밀쳐 버리고 동생이 바꿔쳐 가지고 먼저 나왔던 겁니다. 이래서 복중의 전환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래서 혈통을 맑혀야 된다 이거예요. 혈통을 더렵혔기 때문에 다시 부모의 복중에 까꿀잽이로…. 이것을 예수님도 말하지 않았어요? 니고데모가 와서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할 때에 '너는 유대인의 스승인데 그것도 모르느냐? 중생하지 않으면, 다시 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구요. 다시 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이거예요. 이러한 것이 전부 다 막연히 한 말이 아니라 천리를 두고 한 말인데, 그것을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다말은 세상적으로 보면 비정상적인 여자라구요. 이래서 다말의 역사를 기원으로 해 가지고 혈통적 기반을 복중에서부터 닦은 것을 쭈욱 연결시켜서 가정적 기준에서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왜 그러냐 하면, 사탄세계가 국가기준에 있기 때문에 국가기준까지 그 전통을 연결시켜 가지고 그 시대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그와 같은 심정권을 재현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메시아라는 구세주가 온다고 해서 마리아를 중심삼고…. 마리아라는 분은 비법적인 여인 아니예요? 요셉과 정혼한 여인이 애기를 뱄으니까 안 그래요? 사탄세계에서 갈라내 가지고 하늘의 뜻 가운데서 다시 국가대표의 전통적 기반 위에, 심정적 기반 위에 새로운 생명을 주입해 가지고 별개의 하나의 파당을 만든 거예요. 그래 가지고 예수는 사생아로 태어났다 이거예요.

그런 문제 등등을 볼 때, 왜 그래야 되느냐? 사탄세계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어렵다는 거예요. 사탄세계에서 중요시 안 하는 자리에서 복귀의 길을 헤쳐 나가야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예수라는 분이 태어났는데, 심정적 기준을 볼 때 한 가정적인 기준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한 기준 위에서 혈통을 맑힌 기반 위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중에서부터 사탄이 참소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베레스와 세라는 쌍동이로 갈라졌지만 쌍동이가 아니라 혼자 태어나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역사적 출생자는 예수밖에 없었다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더럽혀진 외적인 혈통을 전환시킨 내적인 하나의 혈통을 중심삼고 복중에서부터 국가와 세계대표형으로 하늘의 장자권을 갖고 태어난 분이 예수였기 때문에,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독생자다 하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독생자가 뭐예요? 독생자로 태어났으니 독생녀는 어디에 있느냐? 이게 문제예요. 독생녀를 찾았으면 역사적 새로운 전환점이 이루어졌을 것인데, 독생녀를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