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집: 제41회 선생님 탄신일 말씀 1960년 02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6 Search Speeches

신앙인은 처음과 나'이 변하지 않고 같아야

지혜, 믿음, 사랑! 믿으면 어느 정도까지 믿겠느냐? 여러분 생각해 봤어요? 얼마만큼 믿겠느냐 말예요. 믿으면 얼마만큼 믿겠나 말이예요.

이걸 잡아 넣고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했으니 믿음과 지혜와 사랑, 이 세가지를 가지고 6년 동안 하루에 세 번 기도해 봐요. 그러면 주나요, 안 주나요? 안 주면 안 됩니다. 안 주면 안 될 비결을 딱 쥐고 있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그래, 주는 줄 모르게 다 줬습니다. 지금에 와서 아는 거예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금에 와 가지고 우리 아버지는 진짜 우리 아버지구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다는 걸 내가 알았고, 천적인 지혜가 어떻다는 걸 알았고, 하늘의 믿음이란 것이 어떻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면 다 안 거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별것 있어요? 천적인 지혜를 빼앗고 천적인 사랑을 빼앗고 천적인 믿음을 빼앗아 도망치는 녀석이 있으면 하나님이 따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 해봤어요?

그저 요만한 마음속으로 헤아리니 `못 믿겠다' 그러는 거예요. 그거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요. 하루도 편안치 못하고 그저 엉거주춤 되어 가지고 쳐 버리면 그저 개 죽은 듯이 할 그런 각자의 마음 갖고 있으니 편안하겠어요? 불편한 마음 갖고 있는 거예요. 그 꼴이니 헤아리고 있는 심정, 혹은 마음의 터를 통하지 못하고 `나 못믿겠다' 그러는 거라구요. 에이, 망할 자식!

그런 믿음에는 하나님이 절대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싸구려 하나님인 줄 알아요? 아예 관계를 맺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믿음으로`하나님 오소' 하면 `오냐' 해요? 어딜 가요, 어딜 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신앙관이 있으면 그 신앙관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안식할 수 있는 기준이 돼야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길을 찾아 나올 때 신령한 사람 찾아가면 `여보, 당신이 오는 걸 벌써 척 알았습니다' 이러는 것입니다. 벌써 몇마디 하면 어느 정도의 신앙성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는 거예요. `당신이 지금까지 믿지 못하고 소화하지 못할 말을 계속하고….' 하면서 말을 하는 거예요. 아예 표준을 그렇게 정하고 대들어야 흥해도 크게 흥하고 망해도 크게 망한다는 거예요. 지옥에 가더라도 지옥 주인 노릇을 한번 해봐야 될 거 아니예요? 하늘의 주인 노릇 못 하면 지옥 주인 노릇이라도 한번 해봐야 될 거 아니냐구요?

그래서 만일 사탄이 있다면 사탄 타고 앉아 가지고 사탄의 꼭대기를 집어 내 봐야 되겠다고 해야 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꼬이고 하나님까지 몽땅 잡아서 꼬이려고 놀음했던 그게 얼마나 놀라워요? 그런 생각들 해봤어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야 이 원리 같은 걸 찾아내지요. 여러분이 허허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무한한 공상가입니다. 망상가 중에도 최고의 망상가지만 그래도 실속 없는 망상은 안 합니다. 실속 없는 망상은 안 하게끔 벌써 심지가 되어 있어요. 심적 기준이 되어 있단 말이예요. 벌써 척 얼마만큼 올라가 보면 아닌지 그런지 알아요. 마음이 향하는 , 천륜이 움직이는 방향만 딱 갖춰 놓으면 그 방향의 궤도를 딱 알아 가지고 조금만 각도가 넓어지면 내려온다구요. 그걸 아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양심은 그런 잼대를 딱 쥐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 원리를 찾게 될 때 제일 비결이 뭐냐 하면,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은 처음과 나중이 같아요. 처음과 나중이 같은데 나중에 플러스 하나를 더한 것이 선입니다. 플러스 하나를 더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변하는 사람은 다 악의 제물이 되는 거예요. 그게 철칙입니다. 변하는 사람은 악의 제물이 돼요. 아무리 좋았더라도 그 좋은 모습이 변해 나가면 악의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밥이예요. 사탄은 그런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그런 경지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처음과 나중이 딱 같아야 돼요. 통쾌한 것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하는 거예요. 됐다 이거예요. 이 한마디가 만나고 싶은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하나님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한, 그 말씀에 기록된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 하나님이 아닌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처음과 나중이 같이 되었으니, 처음에 하던 일이 나중까지 연결되어야 그게 하나님의 사상이라는 겁니다. 처음 대가리와 나중, 성경 첫 페이지와 묵시록을 보면 알 것입니다. 어떤 경서도 첫자와 나중이 안 맞으면 거짓인 거예요, 아무리 좋은 것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원리도 그래요. 아무리 원리가 좋더라도 선생님과 맞지 않으면 다 거짓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결이 그거예요. 선과 악의 기준이 뭐냐?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와 묵시록을 보니 생명나무가 딱 들어맞더라 이거예요. 그러니 이건 진리라는 것입니다. 다 볼 필요 없다는 거예요. 이런 내용적인 것이 복잡한 사정으로 엉클어져 있으니 복귀의 노정에 의해서 구원섭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도 오늘 좋다고 약속했다가 내일 변하면 이놈은 밟아 죽여도 된다구요. 그건 원수예요. 앞으로 밟아 죽여도 좋다 할 때가 올지 모릅니다. 어서 그런 때가 오면 좋겠어요.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어서 그런 때가 오소! 그런 녀석들은 그저 대번에 피를 토하고 죽게끔 밟아 죽여도 하나님이 좋다 할 수 있는, 인정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무자비한 데가 있다구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약속한 것은 자기가 편하기 위해서 한 게 절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활 기준을 어디서 세우느냐? 오늘과 내일이 다르면 이건 벌써 사탄편이 되는 거예요.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길 나올 때 어렸을 적에 결심한 것을 일생 동안 붙들고 가려 하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죽을 때까지 붙들고 가는 그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 선한 사람, 하늘이 모른다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의 주인이요,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주인이더라 이겁니다. 어때요, 그 말이 틀려요? 간단한 얘기입니다.

그런 원칙적인 기준을 딱 잡고 생활 잼대를 세워 놓아야 돼요. 몇 개만 딱 잡아 놓으면, 평행선과 수직선만 딱 잡아 놓고 좌우 조정하면 얼마인지 환히 알 수 있어요. 그렇잖아요? 90각도만 딱 대 보면 몇 도가 되는 지 알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 일은 처음보다 높아져야 됩니다. 처음보다 커야지 내려가면 죽게 돼요. 하늘 일은 점점 올라가지요? 이 천지의 법과 기준은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처음과 나중이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