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집: 복귀의 산정 1969년 07월 2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60 Search Speeches

관전자가 되지 말고 동참자가 되라

그러면 최후의 전체의 승리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기에는 심각한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구경삼아 관전하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날에 있어서 제일 심각한 사람은 그 경기에 뛰는 사람들이겠지만, 구경하는 사람들도 운동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심정을 갖고 선수 중 한 사람이 경기 중에 넘어지면 전체가 넘어진 것처럼 아파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야말로 일심동체가 되면, 그런 입장에서 싸워 승리한 그 승리는 전체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전 청중의 몸과 마음이 일체화 된다면 비록 최후의 승리의 자리를 향하여 그들과 함께 직접 뛰지는 않았지만, 응원하는 데 있어서 한마음이 된다면, 여기에서 직접 뛴 사람들 이상의 보람과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자가 있을 것이고, 심판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뛰는 무리도 있을 것이고, 혹은 구경하는 무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구경하고 있다면 우리는 경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판부의 규칙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규범을 중심삼아 가지고 정당하게 자기의 연단된 실력으로 승리의 일로로 달려간다면 갈 때까지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전반전에는 승리를 했지만, 후반전에 지게 되면 그것은 말짱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전반전에 80퍼센트나 90퍼센트 정도를 승리해 나오다가 후반전 맨 나중 이후에 들어가서 지게 되면 기가 막힐 노릇일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을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심판부의 규범에 해당하는 모든 규범을 스스로 체득하여 그 규범을 어기는 어떠한 조건도 남기지 말고 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싸움의 노정이 우리가 가야 할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운동 경기를 한 예로 들었지만 이것은 너무나 한계적입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전체의 분야에서 수습해 가야 합니다. 가는 데 있어서는 그 산정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고개가 있을 것이고, 아시아면 아시아의 고개가 있을 것이고, 세계면 세계의 고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 국가가 넘어가야 할 고개를 돌파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시아를 거쳐야 할 일선을 어떻게 넘어갈 것이냐? 무엇을 중심해야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을 닦으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직행으로 가는 데는 많은 모험이 따릅니다.

여러분! 250미터 정도 되는 남산이라든가, 조그마한 산을 오르더라도 직행해 올라가는 데에는 사실 고충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넘지 못한 복귀의 길을 넘는 데는 에베레스트산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산을 넘어가는 데에 있어서는 밧줄을 걸고 45도 혹은 90도를 넘어가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혹은 100도가 넘는 고개도 있을 것이고,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복귀의 고개를 넘어가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복귀의 산정을 넘어가야만 우리는 개척자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살아서 그 산정을 넘어가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넘어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죽으면 그만인데 편하게 살지, 그거 어떻게 살겠나?' 하고 생각하지만 죽는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길은 자기의 짧은 생애노정에 있어서 영원을 걸어 놓고 가야 할 산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최후의 승리의 기점을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두고 볼 때, 못났다고 해서 못난 자리에 두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자식은 못났지만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더 높은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어서는 친구라든가 혹은 스승이 제자를 보게 될 때, 못났으면 못난 것으로써 걸맞는 자리에 세우고 싶어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다 높은 입장에, 귀한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십니다. 못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대해 염려를 적게 해 주신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못난 사람에 대해서 더 큰 염려를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력도 없고, 또 안팎으로 봤을 때도 뜻 앞에 보탬이 못 된다고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하나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 부족한 자리를 거쳐 가지고 복귀의 산정을 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여러분들을 데려다 놓고 95퍼센트의 책임을 지시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시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 자신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내일에 남겨진 복귀의 사명이 더 첨부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보다 쉬지 말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