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집: 하나님과 나 1967년 04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8 Search Speeches

아버지와 심정적 일체를 이루" 것이 무-보다 '"해

그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제일 문제가 '하나님과 나'입니다. 그런 관점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안식을 원한다! 누구나 안식을 원합니다. 안식을 원하면 어떠한 위치에서 안식을 원할 것이냐? 그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또, 사람이 어떠한 목적을 바란다! 어떠한 입장에서 목적을 바라느냐? 거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과 나' 이런 문제를 두고 본다면, 여기에서는 부자의 인연과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 가깝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처하고 있는 위치와 내가 처하고 있는 위치는 어떠하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노정에 하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데 하늘이 어떠한 위치에 처해 있었느냐? 아버지가 되신 그 입장은 지금까지…. 입장은 그런 입장에 있었지만 처해 나온 위치는 정반대의 위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느냐? 하늘을 알고, 아버지를 알고 모실 수 있는 입장에 처해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바라는 자리와 우리가 바라는 자리가 어느 한 때에 가서는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일치되는 시점은 무엇이냐?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뜻에 대한 사정이라든가 소원이라든가 여러 가지가 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것보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하늘과 나와의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 위치가 같은 위치에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의 요건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부자관계는 자고로 우리가 부자일신이라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일신이라는 말은 어떠한 관점에서 일신이 될 수 있느냐 할 때, 이것은 무슨 일을 하는 입장에서 일신이 아니다 이겁니다. 이것은 반드시 사랑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심정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일체된 관점에서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진정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하늘과 심정적 위치에서 일체가 됐느냐? 이런 문제를 놓고 날이 가면 갈수록 우리 식구들은 생활 가운데서 분석하면서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개 막연하게 '아버지'라고 하고, 막연하게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을 떠나야 되겠다 이거예요. '나는 어떠 어떠한 입장의 아들 되겠다'고 내 스스로 제시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또, '아버지는 나 때문에,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제시 요건과 내가 하늘 대해 인정할 수 있는 요건, 그 요건이 이렇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관념적인 것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면에서, 생활권 내에서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확실히 서지 않고는, 이것이 확실히 기준이 되어 있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대한 우리도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행사라든가 이런 대집회 때에도 역시 이게 막연하게 해결이 안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문제가 뭐냐 하면, 우리와 아버지의 사이에 심정적으로 일체된 그 자리, 그 위치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겁니다. 하늘이 바라는 기준과 내가 바라는 기준이 어떻게 일치가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언제든지 생각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