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집: 하나님이 걸어오시는 길 1973년 09월 09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41 Search Speeches

상대를 위해 존재하" 것이 창조원칙이자 창조목적

여러분, 각 나라에 가 보면 박물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 보면 맨 처음에 어떻게 출발해 가지고 어떻게 나와 가지고 지금은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하나님도 그런 입장이 아니겠느냐. 이건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출발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출발할 때 하나님 때문에 출발했을 것이냐, 남 때문에 출발했을 것이냐? 그 두 가지 문제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라는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창조는 누구 때문에 한 것이냐? 하나님 때문에 한 것이냐, 인간 때문에 한 것이냐? 이쪽에서 보면, 사람편에서 보면 사람 때문에 했다고 볼 수 있고, 하나님편에서 보면 하나님 때문에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찬가지의 입장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에서 보면 하나님을 위해서 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인간편에서 보면 인간을 위해서 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따로따로 생각했다가는 문제가 복잡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하나의 물건이 있는데 이 물건을 가지고 서로 자기를 위해 있다고 따로따로 생각하게 되면 여기에서 문제가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은 우리 둘의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을 하나님도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와 나는 하나'라는 관념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따라서 하나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사랑이 필요하고 '나'라는 그런 생명의 연장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뿌리이고 우리는 줄기요 가지입니다. 하나인 동시에 사랑한다는 거예요. 하나 하나를 사랑한다는 거라구요. 여기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관념이 나온 것이 아니냐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되어 가지고 나를 사랑하는 것은 되지만, 하나님하고 나하고 갈라졌는데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안 된다는 거라구요. 문제가 여기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여기에 온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구요. 그럼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발현되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하나님하고 갈라져서 나를 사랑하는 자리에 설 것이 아니라 하나님하고 하나되어서 나를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당당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리에 못 섰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되지 못한 자리에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절대시하지 않고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었다면 자기를 절대시하는 것은 당당한 것이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원리 원칙에 당당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거예요.

만일 그러한 자리에 있었으면, 하나님은 '이 우주는 내 것이다' 이러지 않고 '이 우주는 우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거라구요. 복수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단수가 아니고 복수라는 거예요. 우리 것이다! 사람 하게 될 때 '내가 사람이다'라고 않고 '우리가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도 내 가정도 되지만 우리 가정인 것입니다. 나라도 우리 나라요. 세계도 우리 세계요, 하나님도 우리 하나님이 되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 내 나라라고 하는 것이 좋겠어요, 우리 나라라고 하는 것이 좋겠어요? 혼자 있을 때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시고, 이 모든 것이 연관 되어 있는 입장에서 생각할 때 우리 나라라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되어 있겠느냐?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을 중삼삼은 뜻이 아니라 우리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우리의 뜻으로 세웠을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우리의 뜻 가운데는 우리들이 가야 할 한 원칙적인 길이 있습니다.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겁니다. 가정은 가정대로 있고, 민족은 민족대로 있고, 국가는 국가대로 있고, 세계는 세계대로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직선입니다. 직선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아, 행복하다'라고 말합니다. 행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다. 사랑한다' 하는 모든 말은, 인간이 제일 바라는 그런 말들은 혼자, 단수로 되어지는 말이 아닙니다. 전부 다 복수로 되어지는 말입니다. 이렇게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말만이 우리의 행복의 요소가 되지, 그렇지 않은 것은 행복의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겁니다.

남자 혼자 '아! 나는 행복하다'라고 한다고 행복한가요? 사랑이라는 말이 혼자 할 수 있는 말이예요? 상대적으로 하게 되어 있다는 거에요. 웃는 데도 혼자 웃을 수 있어요? 혼자 웃으면 미친 사람이라구요. 귀도 눈도 전부 상대를 위해서 생겨난 거라구요. 눈이 생겨날 때 자기를 이렇게 보라고 생겼어요?(표정을 지으심) 눈은 그렇게 못 본다구요. 전부 상대를 보게 되어 있지요. (웃음) 그걸 보면 전부가 상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손이 이렇게 잡으려고 그래요? 이것이 쉬워요, 이것이 쉬워요? (행동으로 하심) 어느 것이 쉬워요?

이걸 볼 때에, 행복의 요건, 행복의 환경이라는 것은 혼자 있어 가지고는 가질 수 없다고 우리가 결론을 내려도, 그것은 부당한 결론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행복하고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행복해하고 좋아할 수 있나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만들었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가운데 그것이 무엇이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밖에 없다구요, 사람. 사람은 오늘을 위해서, 오늘을 좋아하는 것보다 내일을 좋아하면서 상대적인 세계를 추구하면서 살게 되어 있다구요. 우리가 가진 생명 자체도 혼자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인 세계를 추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