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작금의 우리의 가치 1969년 12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96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세계로 가야 되겠습니다. 내가 분부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해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 만민을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아들딸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지금까지 당신의 출세를 위하여 일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아들딸을 출세시키기 위해서 일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어제는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세계로 향하는 희망의 새로운 깃발을 날리며 하늘 경기의 대열에 참가한 늠름한 모습이 되어야 됩니다. 시시하게 졸장부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련의 노정을 정면으로 부딪쳐 격파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격파하고 나갈 때 무한한 가치가 나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의 사랑, 그 가치의 행복, 그 가치의 자리에서 내일을 흠모하며, 그 가치의 오늘을 찬양할 수 있는 모습, 그것이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승리의 아들딸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위해 우리는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도상에서 죽어갔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죽었으되 죽은 것이 아니고 역사를 살려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까지 참된 세계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신을 위주하고 출발하였던 역사가 자기를 중심삼고 나가게 될 때는 망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자기를 밟고 세계를 자기의 시련도장으로 삼고 역사상에 남겨진 모든 시련을 자기의 생명의 시련노정으로 흡수하여 자기의 생활권내에서 탕감하려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생의 가치를 느끼고 세계를 위하는 데서 삶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거리는 느낄망정, 연한의 차이는 있을망정 그 사람들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엮어간 시련과 핍박의 도상이 앞으로의 역사과정에, 세계 어느 도처에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시련과 고통은 극복하기에 어렵지 않은 제2의 시험만으로써 넘어갈 수 있는 재료를 여기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젯날의 부족한 자신을 위주한 것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위주하여 살수 있는 올바른 애착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6천년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이 당하셨던 시련과 고통을 평면도상에서 일시에 탕감할 수 있는, 즉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할 수 있는 무대를 전개해야 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나를 휩쓸더라도 내가 거기에 말려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사상과 내 신념과 내 행복을 넘어선 자리에서 아버지의 뜻을 심고 갈 수 있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남긴 전통이요, 사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간 그 길이 오늘날 세계를 창조할 수 있고 세계를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갈릴리 해변가의 어부와 친구가 되었고, 당시 이스라엘 나라의 민족적 반역자로서 사라져 간 그 청년, 아무도 몰라주던 예수님의 죽음이 오늘날 세계화될 줄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죽음은 동기가 다르다는 거예요. 역사가 다르다는 거예요. 그 동기의 내용이 하나님과 더불어 뒤넘이쳤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를 움직여 나오는 한 그와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흘린 그 역사를 중심삼고 세계는 거기에 흡수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은 세계화 운동은 자동적인 이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시점은 예수님이 맞던 대로 맞을 수 있는 한 때라는 것은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