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집: 빚 1975년 03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0 Search Speeches

빚을 갚을땐 보태서 갚아야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 교인이다' 하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이겁니다. 통일교회는 어떠한 교회냐? 따라가려고 하는 교회냐, 주체가 되겠다는 교회냐? 하나님의 섭리를 대표해서 첫번째로 나서서 그 뜻을 완결시키겠다는 교회면 교회일수록 단단한 주체성을 가져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여기 있는 선생님이면 선생님 자체가 '내가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사람이다' 한다면 통일교회 사람에게 신세를 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인가 투입을 해야 되겠다. 생애를 바쳐 투입해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통일교회 중심 자격자로서 당당하다 이거예요. 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그는 빚을 물 수 있는 자격자가 될것입니다.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나라를 지도하는 사람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그 나라를 대해 가지고 불철주야 그 나라 국민을 위해 투입하면 그는 애국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나라의 주권자를 평가해야 됩니다. 그는 일신을 투입하는 동시에 자기 가정을 투입하고, 그 대신 명예와 영광을 하나님 앞에 귀결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공적인 이상실현을 바라보면서, 나는 언제나 빚진 자로서 겸손한 입장에 서 가지고 내 모든 것을 더 투입하겠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주권자가 있다면 그는 의인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왜 이래야 되느냐? 역사는 흘러온 대로 이어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강물이 그렇지 않아요?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물은 아무리 크더라도 흘러온 대로 이어받아 높은 언덕이 있으면 그걸 넘어가야 되고 골짜기가 있으면 흘러가야 된다구요. 이어받아 흐르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근원되는 근원이 누구냐?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흘러온 대로 흘러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주체적 자각을 결정한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빚을 갚더라도 주체적인 입장에서 갚아라! 내 책임적으로, 누구 말 듣고 갚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졌으니 으례히 갚아야지요. 갚는 데는 떼어놓고 갚는 것이 아니라구요. 갚는 데는 보태어 갚는 것입니다. 보태어 갚게 되면 빚 지운 사람까지도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빚 지운 사람까지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어젯날은 당당했지만 만일에 다 갚고 한푼이라도 더 그에게 갚아 줬다면 그는 나한테 걸립니다. 이러한 결과가 성립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러한 관계를 두고 볼 때에, 우리는 사회적인 상대적 관계, 혹은 평면적인 상응적 관계라든가 하는 것을 두고 생각해 본다면, 이 주체관은 놀라운 것이예요. 주체관은 누가 절대 점령 못 합니다. 점령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주체관을 갖고 나오는 하나님을 점령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마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또, 여기에는 터치할 수 없다 이거예요. 틀림없이 완성을 하고, 틀림없이 해 나온다는 거예요. 누가 여기에 불평을 할 수 없고, 누가 여기에 개재할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