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집: 참된 식구가 되자 1965년 12월 07일, 한국 춘천교회 Page #296 Search Speeches

참된 식구가 되려면

오늘날 우리가 참다운 자녀가 되고 참다운 형제가 되는 데 있어서는 누구를 중심으로 한 자녀, 누구를 중심으로 한 형제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자녀가 되어야 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면 나도 슬퍼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나도 기뻐하는 그 자리에 나가야 되며, 또한 예수님이 기뻐하면 나도 기뻐하고 예수님이 슬퍼하면 나도 슬퍼하는 자리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개인만이 아니고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다 그와 같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역사적이 구세주 앞에, 혹은 역사적인 참부모 앞에 참다운 자녀로 설 수 없는 것이요,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이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참다운 자녀요, 예수님의 참다운 형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활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참다운 효자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맺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인 것을 알고 예수님의 생활 전체를 상속받아 이 땅에서 실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없고 참다운 형제가 될 수 없으며, 참다운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역사적인 조상으로 왔다 간 예수님은 그냥 지나가 버리고 사라져 버린 주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오늘날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그 뜻을 실현해서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만 예수님이 참부모로서 이 땅에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 신도들은 이 지상에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대신자로서 예수님이 다하지 못한 뜻을 이 세계의 30억 인류 가운데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이루어 놓지 못하면 예수님의 재림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식구라는 명사는 어떠한 것인가? 예수님의 뜻을 상속받아 하나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명사입니다. 형제요, 가족이라는 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식구면 식구끼리, 형제면 형제끼리 어떻게 나아가야 되느냐?

예수님에게는 생활하는 가운데 있어서 부모도 있었고 형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모와 형제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형제와 부모를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념적인 부모를 생각하였고, 이념적인 형제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참다운 아들로 키워 주어야 할 지상의 부모가 못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는 참다운 아들의 입장에 있었지만, 예수님 앞에 요셉과 마리아는 참다운 부모의 입장에 서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 부모의 입장을 대신하여 재림이라는 섭리적인 기준을 세우시고 그것을 위해 2천년이란 기나긴 역사 동안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만일 그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은 참다운 아들로서의 기반을 완전히 닦는 동시에 참다운 형제의 기반을 닦고 참다운 식구의 기반을 닦아 놓았을 것입니다. 또한 살아생전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못한 것까지 수습해 가지고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 부모의 자리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재림이라는 명사는 필요없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부모의 자리를 완결짓지 못하고 가신 연고로 재림이란 명사가 나오게 되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이 남아지고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