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야외예배에서 1958년 05월 11일, 한국 삼청공원 Page #229 Search Speeches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셨던 주님

그래서 남 모르게 겟세마네동산이나 감람산이나 변화산상과 같은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런 산상에 올라, 이스라엘나라와 이스라엘민족을 바라보시며 느끼신 슬픔과 염려의 마음을 같이 공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상에 올라간 것은 영광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십자가를 앞에 놓고 최후의 담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멀지 않아 십자가에 달려야 할 것을 놓고 모세와 엘리야와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랑하는 제자들은 택한 이스라엘민족이 예수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 한없이 슬픈 자리에 계시리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황홀한 영광에 취하는 것보다 안타까운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이만한 환경을 가지게 된 것도 하늘이 이런 환경을 이루기 위하여 수천년 동안 수고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적인 환경권내에서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사람은 하늘과 먼 거리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좋은 환경을 즐거워하는 것보다 그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이 나타날 때까지에는 하나님의 염려와 수고의 심정이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도된 사람이 진정으로 주목해야 될 것은, 변화산상에서 벌어진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우주적인 담판의 기로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님의 사무친 서글픈 심정입니다. 우리들은 외적 환경에서 기뻐했던 제자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예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아들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판도에서 하늘의 선봉자로서 사탄과 싸워야 할 하늘의 정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겟세마네동산에서 가졌던 그 결심과 각오를 우리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세 제자는 몰랐으나 엘리야와 모세는 알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것을 결심하게 될 때 하늘에서 `이는 나의 아들(눅 9:35)'이라는 음성이 들렸고, 하늘이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길을 갈 것을 제시할 때에 예수님은 황공한 심정으로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변화산상에서 세 제자가 예수의 심정과 하늘의 내적 심정을 느꼈던들, 골고다의 길을 혼자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산상의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와 같은 그런 후계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심정과 사정과 생활을 계승하는 후계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이 가졌던 결심을 다시 가져야 할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생활에서 기쁜 일이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자기를 나타내기 쉬우나 예수님은 기쁨이나 슬픔을 자기를 중심하여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하늘로 돌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책임지고 사셨으며, 역대의 선조들도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는 하늘 앞에 면목없음을 느끼어,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로되 자기 일신이 죽음의 길을 가는 것보다 하늘을 더 염려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과는 정반대로 자기를 중심삼고 영광을 취하려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는 자리에서는 하늘과 분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