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집: 남은 때 1970년 05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7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 정성의 기대

하나님께서 역사노정에 이런 환경을 표준하고 수많은 인간들을 이끌고 나오신 것은 인간들에게 화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권내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각자에게 넘겨 주기 위한 사랑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한 작전이 바로 공적인 입장에서 희생하도록 하는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고, 정성들여 주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많이 있을수록 그 사람은 복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 한사람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사람을 많이 갖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가진 모든 복을 많은 사람 앞에 넘겨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복받으라고 축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한 사람을 위하여 열 사람이 정성들이면 그 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 환경을 수습하여 `서로가 서로를 새로운 단계로 자극시킬 수 있는 환경의 터를 넓히자' 해 가지고 하나의 단체를 구성한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책임자는 자기를 위하여 정성들여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무리를 위하여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 수많은 무리가 가야 할 곳은 자기 가정뿐만 아니라, 그 나라와 세계까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의 시선이 자기 가정과 자기 교회의 교인들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교인을 통하여 나라와 세계로 향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제가 들인 정성과 교인들이 들인 정성을 합하여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닦아 주시옵소서' 해야 됩니다. 이렇게 교역자와 교인이 하나되어 주고받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되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때는 자기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부흥을 위해서 하나될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나라가 하나되기 전에는 망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세계가 하나되게 하기 위해 정성들이는 교회가 있다 할진대 그 교회는 세계가 하나되기 전에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사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어가는 그 운명길에서도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뜻, 그 아버지의 뜻의 한계선이 어디인가?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계를 위하여 사선을 넘고, 피흘리는 모든 수난의 길을 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중심된 그리스도를 따라 나오는 신앙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나도 세계를 위해서 죽어간 그리스도의 목적을 위하여 가겠다. 그리스도가 죽음의 길을 간 것처럼 내가 그렇게 죽어갈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가겠다'고 결의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충신의 피땀을 대신 흘리고, 효자의 피땀을 대신 흘리겠다고 결의하는 무리가 세계적이면 세계적일수록 세계는 혁신되어 하나의 발전적인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희생의 피가 흘려진 곳곳마다 그 희생의 한계점은 어디냐? 자기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호소해 나왔다면 그 교회는 한계점, 즉 세기말 시대에 가 가지고는 끝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류와 세계를 위해 역사적인 순교의 제단이 된 교회는 역사를 지배하고 끝날을 청산짓고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기독교가 정성들여 나온 것을 보면, 그들 가운데에 세계적인 기독교권이 승리할 수 있는 한날을 표방하고 기도하는 무리가 많을는지는 모르지만 끝날에 심판받을 원수들까지도 구원하기 위해 정성을 들이고 죽음의 길을 간 기독교 신자들이 얼마나 있느냐? 그 수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기독교의 종말 현상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