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집: 자신을 지키라 1988년 10월 16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116 Search Speeches

행복 가운데 자유가 있느냐 자유 가운데 행복이 있느냐

그렇기 때문에 평화니 행복이니…. 행복 가운데 자유가 있느냐, 자유 가운데 행복이 있느냐? 뭣 가운데 행복이 있으면 좋겠어, 너희들? 자유 가운데 행복이 있으면 좋겠어, 행복 가운데 자유가 있으면 좋겠어? 「행복 가운데 자유가…」 지금까지는 그걸 몰랐어. 그거 물어 보면 `자유 가운데 행복…'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야. 자유도 행복 가운데 가서 깃들기를 바란다는 거야. 행복이 자유 가운데서 깃들려고 하지 않아. 행복 가운데 자유가 깃들려고 한다. 그래서 자유라는 것은 하나의 방향성 행동이다. 결정적 행동이 못 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건 부차적이지 원차적이 아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렇게 볼 때 이 우주는 운동하는, 움직이는 이 전체가 자유야. 지구가 하루에 한바퀴씩 도는 것이 최대의 자유야. 그리고 달은 한 달에 한바퀴씩 돌고 말이야, 지구는 또 360일을 중심삼아 가지고 말이야, 태양계를 돌고 하는 그것이 자유야. `아, 나! 싫어' 하는 건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에 있어서 원리원칙을 떠난 자유가 없다는 것은 이론적이요, 이치적이야. 알겠어? 응? 「예」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야.

그러면 선생님에게 자유가 있느냐?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원리를 떠난 세계에서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은 파탄을 가져와. 안 그래? 그래야지. 선생님이 나이가 많으면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자유의 법도가 있는 거야. 이 나이 많은 사람이 처녀들 보고 연애하겠다고 그러면 그거 어울려? 응? 세상이 다 웃지? 침 뱉지. 모든 것이 원리에 맞아야 된다구.

자, 아까 어디에서 그랬나 하면 말이야, 자유가 어디에서 오느냐? 아까 힘과 작용과 주체 대상 관계를 얘기했는데 자유가 어디서 오느냐? 남자의 자유는, 최대의 이상적 자유는 뭐겠느냐? 여자의 품에 품기는 것이다. 무슨 여자?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여자. 이렇게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여자의 최고의 자유가 보장해서 찾아가야 할 길이 어디냐? 딴 거 없어. 혼자 사는 게 아니야. 천지가 다 존경할 수 있는 남자의 품에 품기는 것이 여자의 자유가 목적하는 그런 목적지다. 그런 거 같아, 안 그런 거 같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거 같아? 「예」 별 거 아니야.

그러면 그 여자 남자가 왜 그 품에 품겨야 되느냐? 그것은 여자로써만은 이룰 수 없고 남자로써만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둘이 만나서 이루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 거기서 자리를 잡기 때문에 사랑이 거기서 출발하는 거야. 여자 남자가 비로소 만남으로 말미암아, 만나 가지고야 행복한 사랑의 길이 열리는 거야.

그러면 이 길이 어떻게 가느냐? 이것이 문제야. 길도 `내 마음대로 가겠다' 하면 안 된다 이거야. 법도를 따라간다, 이게. 이거 알겠어? 원리 원칙의 길이 있는 거야. 그러면 그 길이 어디로 가느냐? 영원한 세계까지 이 사랑의 줄을 달아 가지고 더 큰 세계에 접할 수 있는 가치적 판도가 나에게 계승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지.

그러면 아까 그 근본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은 생각의 시작에서부터 계셨다. 생각하는 자체에서부터 있는 것이다. 우주 구성체 자체가 맹목적으로 된 것이 아니야. 이 방대한 우주가 상대적,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대응하면서, 주고받는 운동 하면서 영속적인 그 법도의 궤도를 따라 가지고 영속해. 법도의 궤도를 따라가야 영속하는 거야. 법도의 궤도를 따라가지 않으면 영속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가 벌어져. 우리도 이제 밥 먹고 소화가 정상적으로 되어서 영양 요소가 정상적으로 혈관을 통해서 보급되어야 영속이 벌어지지? 정상적으로 보급되어야 돼. 잘 주고 잘 받아야 영속이 벌어지는 거야.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생각이 시작된 때부터 있어 온 것이다. 그 이상은 추구했댔자 논리적 근거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이거야. 결론이 거기까지 해서 나왔다구. 논리를 앞선 자리에 계시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해 놓아야 된다구.

그러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느냐? 하나님은 누가 만들기는 뭘 만들어? 하나님은 그렇기 때문에 자체가 존재할 수 있는 거야.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느냐? 가만히 있지만 반드시 그 자체 내에서 주체와 대상적인 내용을 가지고 작용을 할 수 있다. 그 작용을 하게 되면 이게 좁았다가 넓었다가 한다는 거지. 그렇잖아? 하나님 자신도 작용하게 된다면 컸다가 작았다가 해야 되잖아? 크면 어떻게 되느냐? 이게 올라간다는 거야. 이게 커지면 내려온다는 거야. 이 자리에서 만나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형태가 컸다가 작았다가 하는 작용을 하려면 평평해서는 안 된다 이거야. 알겠어? 납작해서는 안 된다 이거야. 그래서 이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체적 구형이 필요하다 이거야. 그런 논리가 나온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