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집: 나라의 뿌리와 향토애 1988년 08월 28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61 Search Speeches

심정을 전수하려면 비참한 -사를 알아야

선생님이 서울에서의 학생시절에, 여러분 같은 연령 때에는 점심을 안 먹고 살았어요. 이식주의(二食主義)예요. 왜? 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배고픈 사실을 알고…. 부모님을 알려면, 부모님의 심정을 알려면 배고팠던 사연을 잘 알아야 합니다. 배고팠던 부모의 역사가 있으면 배고팠던 부모의 사연을 알아야 돼요. 배고픈 자리에서 그 부모에게 효도 못 한 자신을 탄해 가지고 배고픈 그 시대에 효자 될 수 있는 내 스스로를 준비해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서울이 그때는 추웠어요. 요새는 더워졌다구요, 사람이 많이 살기 때문에. 영하 17도를 오르내렸어요. 지금은 사람이 많지만, 그때는 서울 시민이 50만 명밖에 없었어요. 그런 추운 겨울에 15일 동안 방에 불을 안 땠어요. 불을 안 때고 살았다구요. 찬 방에 살면서도 효자는 효자 놀음을 해야 돼요. 찬 방에 모신 부모의 그 서글픈 심정을 품고 하늘땅을 걸어 사랑하지 못하는 불충을 회개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늘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모본단 포대기를 습기찬 방에 며칠씩 깔고 자다 보니 다 습기가 차 가지고 누웠던 자리가 그냥 그대로 판에 박아지더구만. 장판장에 말이예요. 그냥 그대로 판에 박아지대요. 그런 것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 선생님이 일기로 많은 시를 썼던 책이…. 일기를 매년 썼던 거예요. 일기를 하루에 한 편씩 썼어요. 그때 그 책이 있으면 여러분이 통곡할 수 있는 재료가 많을 거예요. 왜정 때에 조사 대상이 되어서 그 일기가 신문받을 때 문제가 됐던 것을 알기 때문에 일기를 안 썼습니다. 절대 그런 흔적을 안 남겨요. 사진까지도 찍기를 꺼려했던 겁니다. 그 1970년도…. (녹음이 잠시 끊김)

형님 동생의 역사를 보면 부모님과 형님 동생이 교단적으로 민족을 넘고 환경을 넘어서…. 지금 그렇잖아요? 도(道)와 도가 지역적으로 전부 분립되어서 투쟁하는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민족 이념을 가져 가지고…. 앞으로 세계 사람들이 와 가지고 여러분이 하던 이상 해야 할 때가 오는 거예요. 환고향을 해 가지고, 자기들도 세계의 심정적 뿌리인 여기에 연결시켜 가지고 본향 땅까지, 자기 고향 땅까지 연결시킴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길이 열리게 되고, 심정의 길, 심정의 대해에 흘러 들어갈 수 있는 지류로서 남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이 지내던 모든 것을 기념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저 범일동 산골짜기에 가서 축대를 쌓고, 요즘엔 다 없어졌더구만. 축대를 쌓고 형편없이 불쌍한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다 흘렸어요. 그 비통한 역사적 시대에, 민족 이념이 갈 데 없는 원망의 그 한계선에서 태평양 바다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 그 방파제가 된다는 입장에서 민족을 대표해 기도한다는 심정을 가지고 혼자 그 외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본부교회 같은 데서는 선생님의 심정을 모른다구요.

그 세계의 마음을 가려 가지고 숙연한 자세로서 전통을 전수받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국경을 초월해 가지고 같은 은사의 줄에 인연되는 것은 그러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