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집: 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 1965년 12월 07일, 한국 춘성교회 Page #329 Search Speeches

복귀의 노정이란

복귀의 노정이란 무엇이냐? 원래는 구주라는 명사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그냥 상담할 수 있는 형제의 입장에서 주님을 모실 수 있어야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요, 복귀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치에 맞을 게 아니예요? 그러면 우리가 왜 복귀의 길을 가야 하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이 없었더라면 한번으로 그만일 텐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3시대를 거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생인 구약시대를 거쳤고, 장성인 신약시대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새로이 오시는 주님을 표본으로 하여 완성시대인 성약시대를 거쳐 가야 합니다. 이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아담 한 사람을 재창조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였습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이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연고로, 아담 가정에서 노아 가정으로 밀려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노아 시대에서 아브라함 시대로, 아브라함 시대에서 모세 시대로, 모세 시대에서 예수님 시대로 연장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은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프로에 의해서 전개되어 나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또한 이 복귀의 길을 하나님이 더듬어 오셨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아담 가정에서 복귀의 기준을 세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에 1600년을 수고하여 아담 가정 대신 노아 가정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노아에게 120년 후에 홍수심판을 하겠다는 것을 예고할 때, 노아 자신은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들려오는 것은 명령뿐이었습니다. 이제부터 12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난 후 ‘기필코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억울한 내적인 슬픔과 한을 풀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자신을 찾아오셨다는 것을 노아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묵묵히 하나님과 약속한 내용을 일편단심으로, 촌시라도 잊지 않는 신념 가운데서 지켜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있어서 노아는 120년 동안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복귀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여 제2의 인간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악한 세계에 있어서의 모진 바람과, 모진 시련과 모진 환경에 부딪히게 되어도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어떠한 시련에 부딪히더라도 노아는 아담과 같이 천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서지 않겠다는 그런 확고한 신념의 기반 위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가 120년 동안 아라랏산에서 배를 만드는 그 기간은 행복한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덧없이 세월이 흘러갈 적마다 그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은 노아를 미친 노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뭐 120년 후에 인류를 심판해!’ 하는 조롱과 비소, 억울함과 분함이 휘몰아치는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약속한 그 약속만은 버리지 않고, 일념의 신앙심으로 그 환경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 즉 노아의 아내와 자식까지도 노아를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왜 그랬느냐? 120년 동안 그 일만 하고 다녔으니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이 뭐라 했겠습니까? 여러분이 노아의 아내가 되고 노아의 자녀가 되어 보십시오. 그렇게 되겠나, 안 되겠나? 120년 동안 그러한 일들을 하고 다녔으니 그 모습이 어떠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도 노아를 원망했고, 사랑하는 자식들도 노아를 원망했습니다. 원래는 믿어 주기를 바라서 그 가정을 세웠고, 믿어 주기를 바라서 그 사명을 맡긴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었습니다. 그 가정이 일치단결하여 노아의 뜻을 받들어서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세워지기를 바랐던 것이 하나님의 바램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 가정이 하나님의 뜻을 믿지 못하고 반기를 들고 반대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노아는 그러한 자기 가정을 이끌고 자유와 소망의 한 날, 하나님과의 약속한 그날을 위해서 참고 참으면서 120년을 지내온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이 얼마나 슬펐고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분했는가 하는 그 내정적인 심정을 모르면서도 그렇게 믿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신보다도 불쌍한 자리에 서 계신 분이 하나님인 것을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몰아침을 받고, 시달림을 받는 노아를 바라볼 적마다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비통함이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이 통할 수 없는 종의 입장이었던 노아였기에, 하나님은 그 내적인 사정을 말하지 못하고 그를 대해 나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