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집: 뜻과 우리의 생애 1972년 06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1 Search Speeches

"영원한 뜻의 목적과 방향이 일치된 생활,생애가 되어야"

그러면 우리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선한 편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과, 우리 개개인의 생활 가운데서 악을 어떻게 퇴치시켜 버리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의 길이라고 할 때 뜻은 막연한 뜻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뜻입니다. 그 뜻이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향해서 갈 수 있는 방향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방향이 일치되지 않게 될 때 그 목적은 우리와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멀면 멀수록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그 방향에 대해서 우리는 더 각별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목적이 가깝다면 그 방향을 맞추기가 쉬울지 모르지만, 목적하는 바가 멀면 멀수록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 목적과 일치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그 방향을 맞춰 나가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 목적이 눈앞에 보인다면 방향을 무시하고, 방향을 생각지 않고 대번에 갈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이 멀면 멀수록 그 방향이 애매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이 뜻 가운데는 개인적인 뜻도 있는가 하면 가정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민족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세계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최후에는 우리 통일교회가 말하는 천주주의라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이 하나될 수 있는 뜻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가고 있다면 우리 인간들도 그 목적을 달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가는 방향과 우리가 가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바라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 또 생활을 통해서 목적한 일을 성취시킬 수 있는 하루 하루를 남기느냐 못 남기느냐 하는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그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에 대한 확실한 관점을 세워서 거기에 적중될 수 있는 방향,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어떻게 갖추어 나가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아무리 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방향이 어긋나면 그 목적과는 상관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갖고 나설 때에는 언제나 방향의 일치라는 문제를 우리는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방향 일치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목적과 나는 직선상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과 나와는 언제나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직선상에서 그 목적과 상대를 갖춘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오른발을 옮기고 왼발을 옮길 때, 그 목적과 직선으로 일치되는 자리를 취하지 않고는 반드시 엇갈리기 마련입니다. 벌써 한 발짝을 잘못 디디면 엇갈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바른쪽으로 치우쳐도 안 되고 왼쪽으로 치우쳐도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용을 취해 가지고 그 목적과 그어지는 직선상에서 일치화시킬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는 데서부터 목적의 결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직선을 무시하고 그 직선과 일치되지 못하는 시간적인 기대 위에 서게 되면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그 길은 이미 탈선이 되어 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든가 혹은 보고 느끼는, 즉 오관을 통해 느끼는 데 있어서도 자기 홀로 느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홀로 느낀다는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목적과 일치하는 방향을 가진 자리에서 느끼게 될 때, 그 자리는 공동적인 목적을 향하여 공동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방향을 취한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필코 같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엇갈리게 되면 하나님은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방향이 잘못되면 수고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협조하게 되면 협조한 만큼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서로 소모가 되는 것입니다. 헛일이 되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서게될 때는 하나님이 협조할 수 없고 같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난 이후 느끼는 모든 감각이나 동작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나 직선상에 귀일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점을 상실하게 될 때에는 뜻과 나와는 관계맺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루가 24시간인데 이것을 반으로 가르면 주야가 됩니다. 그 주야를 다시 가르면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이 됩니다. 밤도 자정을 중심삼고 반으로 가르면 밤과 새벽으로 갈라집니다. 하루를 중심삼고 보면 아침이라든가, 낮이라든가, 저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도 작기는 하지만 춘하 추동을 갈라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은 봄절기와 마찬가지요, 낮은 여름절기와 마찬가지요, 저녁은 가을절기와 마찬가지요, 밤은 겨울절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더 세분해서 보면 한 시간 가운데서도 그러한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종점이 있고 다음에는 성패의 영욕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