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집: 민족을 초월한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 1989년 07월 09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84 Search Speeches

복귀의 노정이 어려운 이유

한국 사람과 결혼한 사람, 손 들어 봐요! 시부모나 장인 장모, 또는 친척들을 만나도 말이 안 통해요. 이게 원수예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답답해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 '아, 왜 이렇게 일본 사람으로 태어났느냐?' 하는 …. 심정의 자유를 빼앗기고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자리에 있을바엔 차라리 한국의 미천한 집안의 종 같은 아들딸로 태어났더라면 그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돌아가면, 이번에 그대로 돌아가면 무엇을 남기고 가는 거예요? 한국에 무엇을 남기고 가요? 한국에서 무엇을 얻고 가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래서 그것은 원칙에 따라서 재창조…. 타락한 인간이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재창조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돼요.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하나님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입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다시 전체보다도 더 이상의 것을 투입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한 방향뿐만이 아니예요. 사방으로 투입해야 돼요. 위에로만도 아니고 아래로만도 아니고…. 좌우로도 같이 투입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노정은 세 배 이상 어려워요. 왜냐하면, 사탄세계의 습관성이 붙은 그 무서운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일 고심한 것이 무엇이냐? 천주를 주관하기 전에 우주를 주관하고 우주를 주관하기 전에 자기를 주관하는 거예요. 여러분, 원수는 자기 자신이예요. 한국이 원수가 아니예요. 이 세계가 원수가 아니예요. 원수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이 원수권을 뒤집어 박지 않고는 천국을 생각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학생시절에, 여러분과 같은 나이 때에 배 고프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그런 길을 더듬어 왔어요. 학생시절에 고향을 떠나 서울 같은데 가서 학교에 다녔어요. 방학이 되어도 집으로 안 돌아가는 거예요. 어머니와 형제들은 '왜 오지 않느냐?'고하는 거예요. 밥을 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자취를 하면서…. 심각했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그렇게 역사를 지나왔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자기 자신이 원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야 할 사람도 자기 자신이예요. 자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그래서 학생시절 때부터…. 선생님은 그렇게 미남자는 아니었지만 여자들이 따라다녔어요.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남자였어요. 이렇게 추남같이 하고 있지만 그렇다구요. 선생님에게 프로포즈를 해 온 여자들이 많다구요. (웃음)

일본에서도 그래요. 일본에서도 선생님이 젊었을 때에는 가시야(貸家)…. 가시야가 있지요? 가시야, 알아요? 돈이 필요할 때 시계 같은것 맡기는 그런 곳을 뭐라고 그래요? 돈을 빌린다든지, 옷 같은 것을 쓱 말이예요…. 「시치야(質屋;전당포)입니다」 시치야! 시치야지요? 학생들이 옷을 전당포에 맡겨 놓고 찾아가지 않은 것들 중에서도 제일 낡고 냄새가 나는 것을 입고 머리도 이렇게 했어도 가는 데마다 여자들이 따라다녔어요. '저 남자는 말이 없는 남자'라고 하면서…. 저런 추한 남자한테 누가 관심을 갖겠느냐?'고 했겠지만 그 반대지요. 스스로 그 환경을 수습해 가면서….

여러분도 그렇겠지요? 자기를 이긴다고 하는 것이 어려워요. 제일 어려워요. '자기를 이기고 진정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을 사랑했느냐?' 고 할 때, 어때요?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일본에 돌아가면 마음이 편하겠어요. 안 편하겠어요? 어느 쪽이예요? '아, 감옥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강고쿠(韓國)가 강고쿠(監獄)예요. (웃음) 감옥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일본 말로 '강고쿠'라고 하면 감옥을 말하는 것이지요? 감옥에 두 번 다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돌아가면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전통을 남겨요,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전통을 남겨요? 어느 쪽이예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가지고 돌아가요? 아, 아홉 시가 다 됐네 ! 그거 깨끗이 정리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일본에 가 있을 때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것을 남기고 가자'고…. 선생님이 일본에 가서 안 해본 것이 없어요.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뭐 노동도 하고 말이예요…. 가와사키(川崎)에 조선소가 있었어요. 그런 곳에 가서 노동도 했어요. 석탄을 운반하는 배 같은 데서도 일을 했어요. 120톤짜리 바지선에 석탄을 싣는 것을 셋이서 떠맡아 가지고 네 시간 만에 다 해 치웠어요. 그거 죽을 힘을 다해서 땀 범벅이 되어 가지고 열두 시 전에 끝내려고…. 거기 가는데 와세다(早稻圖)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에서 가려면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려요. 한 시간 반 정도는 걸리기 때문에 새벽 세 시에 나서는 거예요. 학생복은 밀쳐 두고 작업복을 입고 나서는 거예요.

그게 학생시절이었어요.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심각했던 거예요. 그렇게 해서 여러 가지를 해본 거예요. 유명한 사람들의 서체(書體)도 배웠어요, 붓글씨. 선생님은 글씨를 잘 써요. 여러 가지의 것들을 다 해봤어요. 배후관계의 좋고 나쁜 것을 모두 해본 거예요. 사창가까지 가 봤어요. 그거 나쁜 것이 아니예요. 일본을 잘 알아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모르는 것이 없어요. 빈민굴까지도 다 알아요.

선생님이 젊었을 때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지 다 했기 때문에 손이 이렇게 거칠어요. 발은 작아요, 선생님이. 이만한 남자치고 발이 이렇게 작은 거 봤어요? 여러분이 보면, '이야, 선생님의 발이 이렇게 작다!' 할 거예요. (웃음) 손도 그래요. 손도 작지요? 두툼하기는 하지만 말이예요, 작아요. 이런 것은 고생 안 할 타입이예요. 팔자가 고생 할 타입이 아니예요. 실제로는 그렇지요? 세상에서 가장 편한 한평생을 살아야 할 선생님이 제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왜? 재창조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세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선생님이 그 책임을 짊어지고 탕감복귀를 위해서 생각도 할 수 없는 길을 걸어 나온 거예요. 거기서 만약 주저 앉았더라면 통일교회가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오늘 이렇게 일본 말로 여러분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도 결코 있을 수 없었겠지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런 것도 가능하게 되었고, 또 원리의 노정을 더듬어 왔기 때문에 핍박의 노정도 당당히 승리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