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행복은 상대를 '심삼" 데서 가능해그럼, 그게 사실 그렇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 생각해 봅시다. 사람은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좋기를 바랍니다. 웃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춤추고 살고 싶어합니다. 노래하고 싶어한다 이거에요. 이 모든 행복의 여건이 나만을 중심삼은 것이냐 그렇지 않는 것이냐 할 때, 나를 중심삼은 것보다도 상대를 중심삼은 것이 더 많은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아, 난 백만장자다. 나 혼자여도 행복해…' 혼자 행복할 수 있어요, 혼자? '난 학박사가 됐으니, 난 행복해…' 혼자 행복하겠다는 거예요? '난 권력을 쥐었기 때문에 행복해…' 혼자 행복해요? 나만 있으면 다 필요 없다구요. 돈도 많이 필요 없고, 지식도 필요 없고, 권력도 필요 없다구요. 행복의 여건을 두고 볼 때, 나를 떠나 상대를 위하는 데에 있어서 이것이 성립될 내용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웃는 거 말이예요, 혼자 웃어요? 혼자, 자기 때문에 웃어요? 그러려면 석경을 보면 돼요. 춤추는 것도, 혼자 추려고 그래요, 혼자서도 춤을 잘 추려고 그러지요? 그거 왜 그래요? 좋은 옷을 입는 것도, 나 때문에 입으려고 그래요? 내가 행복하려고 그래요? 남 좋게 하려고 입는 거예요. 좋게 하려고…. 미인이 되고 미남자가 되려는 것도 자기 좋기 위해서 그래요? 전부 다 뭐냐 하면, 상대가 필요하고 상대를 위하는 데 있어서 행복의 여건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행복의 절대적 요인인 것을 우리는 발견해야 돼요. 내가 기분 좋게 웃을 때 저쪽에서 '흐―' 이러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이러면 (표정을 지으심) 기쁘던 것이 당장에 변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잘 만들지 못하면 영원한 행복은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환경을 상대적으로 좋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나와 더불어 같이하겠다는 사람, 나와 더불어 같이 기뻐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데서, 나와 더불어 살겠다고 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서 참된 행복의 길은 생긴다고 우리는 규정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는것 같아요?「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