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집: 우리의 갈 길 1970년 09월 0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62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위대한 자각

그러면 이 자리에서 염려할 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은 아담 가정으로서 갈 길을 전부 알았느냐? 몰랐던 것입니다. 노아도 120년간 방주를 지으면서 수난의 역경을 타개해 나가는 생활의 일면은 남겼지만, 그 과정에서 어떠한 섭리적 반응을 일으키고 역사적 신념의 인연을 거쳐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러했고,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그렇지만 온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심정적 그 배후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이 어느 한때에 밝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역사적 심정으로만 남아지게 할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감정으로 표현해 가지고 그 역사적 슬픔을 오늘의 현시점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지난날의 슬픔이 아니라 오늘의 슬픔으로써 하나님을 붙들고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그런 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땅 위에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역사와 시대에 연결되고, 시대와 미래에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심정적 총합체가 와야 합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과거 현재 미래에 통할 수 있는 하나의 결합체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합시켜야 할 사람은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짊어졌던 사람이 누구였느냐?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암흑과 같은 이 세상, 무지한 이 천지 가운데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했던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천국이 왔다'가 아닙니다.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자기로 말미암아. 그러면 천국은 무엇과 더불어 오느냐? 자기와 더불어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와 더불어 오되 자기의 무엇과 더불어 오느냐 하면 심정과 더불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심정의 인연은 역사에 반영시켜야 하고, 시대에 반영시켜야 하고, 미래에 반영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온 역사시대를 대신한 중심적 입장에서 심정적 반영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 자아의 가치를 갖고 나타났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자기 자체를 존중시하고 자기 자체의 가치를 확실히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랑은 자기밖에 할 자가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각을 하여 발표한 것이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는 말입니다. 독생자의 자격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독쟁자라는 말은 무엇을 중심삼고 한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다.

그러면 독생자뿐이겠는가! 독생녀는 누구냐? 없었습니다. 독생녀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의 서글픈 길이 남아진 것입니다. 독생자가 독생녀를 가려 가기 위해서는 독생녀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수많은 종교는 하나의 남자를 세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책임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남자를 세울 수 있는 역사의 종말은 무얼 두고 하는 말이냐? 세상이 허무해지고 세상이 심판 받는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절대적인 입장에서 역사의 부활을 대신할 수 있는 자각된 아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자각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나만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까지 어느누구도 받지 못한 사랑이다. 나로 말미암아 비로소 시작된 사랑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생자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독생자의 심정적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자기의 외로움 보다도 하나님의 외로운 역사를 엮어 나왔던 하나님의 심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심정을 통해서 일생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를 남기기 위해서 그때까지 수고한 하나님의 심정이 거기에 반영되었던 것이고, 또 그 심정을 통해서 그때의 현실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미래의 천국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현실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