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집: 본향을 찾아서 1967년 05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4 Search Speeches

인간의 이상은 사'으로 이루어진다

여러분이 옷을 빼앗아 입어도 싫어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네 집에 찾아가면 어떻습니까? 마음과 몸이 쪼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세포까지도 편해질 것입니다. 부모의 품이 그리운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얼마 동안만 지나게 되면 어떻습니까? 편안하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쫄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게 평(平)입니까? 화(和)입니까? 평이란 모든 것이 풀리는 것입니다. 안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끄나불이란 끄나불은 다 풀어 놓는 것이 안식입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역사과정에서 본연의 마음을 중심삼고, 본연의 마음이 그리워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단 하루도 안식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인간은 하나의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데는 두 사람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아버지와 아들딸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자면 사람도 모여야 되고 춤과 노래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만 하면 되지 무슨 노래가 필요하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감정을 넣어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노래도 필요한 것입니다. 또 '가만히 서서 있으면 됐지 춤은 왜 추어야 하느냐? ' 할지 모르지만 춤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좋은 것에 도취되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창(唱)이라도 한번 불러보면 그저 뼈속에서부터 흐물흐물해지고 세포들이 들썩들썩하고 눈이 어물어물해지고 눈물까지 나오는 요동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왜 필요하느냐?

아버지와 자식이 둘이서 들여다보기만 해도 좋지 않느냐? 그것도 사랑은 사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천지의 조화가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나, 아버지와 자식, 둘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대조건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으면 어머니가 있어야 되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만약 여자들만 있는 세상이라면 여자들은 여자들만 자꾸 만나는 것이 싫을 것입니다. 또 남자들끼리만 살게 되면 남자들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있으면 어머니가 있어야 되고, 부모님이 있으면 자식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형제자매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를 위해서 있어야 하겠습니까? 부모님을 위해서이겠습니까? 형제를 위해서이겠습니까? 과연 누구를 위해서이겠습니까? 나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형제자매도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모두가 다 나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아서 입이 저절로 벌어집니다.

인간에게 욕심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보따리째로 받아서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혼자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인데 아버지를 위해서 태어났고, 선생님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얼마나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몇천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왔다 갔지만 모두가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왔다 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막 8: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위한 하나님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나님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입니다.

선생님이 집에서 애기들을 돌보아줄 때, 큰아이들을 먼저 품에 안아주면 어린 동생이 그걸 보고 '아빠 나도 안아줘요' 합니다. 오빠나 언니를 안고 있는 팔을 그 조그만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아빠 나도 안아줘요' 그럽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본향의 땅을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랑의 본질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아니면 예수님을 위해서?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나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믿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믿는 것입니까? 이것 역시 나를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어야 할 세계는 본연의 세계요, 그 본연의 세계는 어차피 이루어야만 되는 데 그 세계를 나 혼자서 이루려고 한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그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하면 그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나 때문에 세상에 나타났고, 하나님도 내 속에 들어 있고, 세계도 내 손에 달려 있으니 오직 택함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내가 주체이니만큼 주체와 대상이 잘 주고 잘 받으면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 된 자리에 서게 되면 그도 나요, 나도 그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법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귀결되는 것입니다.

도의의 조건을 찾으려고 선후 관계를 논의하고 심문하는 세계는 불안한 세계인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선후 관계가 완전히 하나 되어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언제나 주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