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집: 제3회 애승일 말씀 1986년 01월 03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82 Search Speeches

비참했던 40년 노정

여러분, 통일교회를 만들어 가지고 저 이화여대 사건으로부터…. 여러분은 미처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마음 졸이며 탕감복귀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 일생을, 40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런 고생 가운데 여러분들이 태어났어요. 지금까지 생각이 어디로 통했고 어디를 거쳐왔느냐 하는 것 다시 한 번 반성해 보라구요. 선생님이 여러분 마음속에 얼마나 있었어요? 응? 응? 그걸 용서할 수 없는 거예요.

내가 나를 위해 가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들을 위해서, 축복해 준 가정을 위해서…. 나는 축복가정에 대해 책임을 다했다구요. 36가정에게 집을 사 주고, 120가정이 어디 갔다 와서 돈 없다 하게 되면 나 쓸 비용을 전부 다 절약해 가지고 주었다구요. 이번에도 다 나누어 준 거라구요. 나에 대해서는 어떤 가정도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이 없어요. 내가 조건에 걸리는 생활을 안 하는 사람이라구요.

내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손수건 한 장 안 사 주었지만, 통일교회에서는 옷을 사 주고 밥을 먹여 주고 집을 사 주고 별의별 놀음 다 한 사람이라 이거예요. 이걸 다 생각할 때에 효도라는 말을 들고 나오게 된다면, 나를 낳은 어머니 아버지 앞에는 나 효도 못 한 사람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 앞에는 효도했다는 거예요. 그 어머니 아버지에게 저 천상세계에 가 가지고 자기 아들을 자랑할 수 있는 특권을 내가 부여한 것이 되는 거예요.

나쁜 아들이라고 보고 원망도 하고 반대도 하고 다 이랬지만 영계에 가 보니, 그는 나에 대해서는 불효의 길을 간 것 같지마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효자의 길을 갔다는 팻말이 박혀 있다는 거예요. 그걸 보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하늘땅을 대신해서 감사하면서 자식을 동정 못 했다고 통곡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 것을 내가 아는 사람이라구요. 우리 형제들도 그래요. 형님 혹은 동생들을 내가 사랑한 사람입니다. 나 때문에 많이 희생했어요. 우리 가문이 희생하고 우리 고을이….

한국이 기미년 그때 흉년이었어요. 기미년 만세 때 중심삼고 7년 흉년이 연속되는 그런 환경에서 한 사람이 태어났다구요. 그런 국가적 운세를 탕감하는 탕감과정에서 하늘이 보내신 선생님의 일생의 노정은 참 처참한 노정입니다. 전쟁시대에서부터 태어나 전쟁시대의 갖은 변화무쌍한 곡절의 사연들을 다 거쳐 온 것입니다. 그래서 40년 기간의 인류역사는 급변했다구요. 그런 모든 수난기에서 선생님의 이 한 몸은 전부 다 거쳐서 온 거예요. 슬픔, 고통 전부 거쳐오는 거예요, 배고픈 것도. 그래서 30세 넘을 때까지 나는 배부른 세상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라구요. 돈이 없어 그런 게 아니라 내 스스로 그런 거예요.

학생시절에 자취생활을 했어요. 서울이 요즈음엔 날이 좋지만 그때는 영하 21도, 평균 영하 15도 이하로 추울 때였어요. 추웠어요, 그때는. 우물에서 두레박질을 할 때, 쇠두레박질을 하게 되면 끝이 자꾸 끊어지곤 했다구요. 그런 때에 찬 방에서 사는 거예요. 찬 방에서 자취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때 이불 포대를 찬 방에다 깔고 자다가 아침에 떡 일어나면 짝― 하고 그냥 그대로 판이 박히는 거예요. 이것이 암만, 일주일 지워도 안 지워져요. 그렇기 때문에 무늬가 돋는 판이예요. 불을 안 때고 사는 젊은 청년이 비참하다고 생각할는지 몰라요. 추우니까 할 수 없이 전깃줄 코드를 해 가지고 썼으나 지금 보면 여기저기 흠이 있는 거예요, 타 가지고. 그걸 두고 볼 적에 내가 잊지를 않아요, 다리를 볼 적마다. 어머니한테 이런 말을 안 하지만 말이예요, 내 몸에 흠이 난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게 절약을 해 가지고 친구들이 학비를 못 내는 것을 내가 담당하기 위하여 어떤 때는 구루마도 끌고….

그리고 첫 학기 마쳤을 때, 고향 떠나 가지고 서울에 와서 맞은 학교의 첫째 번 여름방학에는 집에 안 갔어요. 왜? 왜? 남들은 서로 간다고 시간 다투어 차표 산다고 했지만 나는 엄숙히 혼자 있었어요. 다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는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내가 이런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통고하는 거예요. 왜, 왜 그랬을까요? 사탄세계와 다른 길을 가야 되기 때문이예요.

그때 내가 써 둔 시라든가 일기가 있어요. 일기를 쓰되 어떤 날은 노트 30장, 한 권을 썼어요, 그때 심정의 모든 비장한 사실을 가지고. 왜정 때에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게 전부 다 자료가 돼 가지고, 그 기록 가운데에 형제들이나 관계되어 있는 이름 적힌 사람이 전부 다 연루자가 되어 가지고 줄연행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일기를 안 쓰는 거예요. 지금까지 수첩도 안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모두 머리에 기억하는 거예요. 지금 게릴라 전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심각한 얘기를 여기 학생들 앞에 내가 안 해도 될 거라구요. 하나님의 뜻의 그 미궁의 세계를 어떻게 개척하느냐 이거예요.

자, 이렇듯 지난날을 회고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과 같은 학생시대가 있었겠지요. 보라구요. 선생님은 머리를 …. 여기 우리 현진이를 보게 된다면 미남으로 생겼기 때문에, 전부 다 머리를 자진해 가지고 딱 맞춘 거예요. 거 아버지 닮았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