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전후방 1971년 02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5 Search Speeches

하나님께서 찾으시" 사람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과연 소망의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고,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애국심에 불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늘나라의 가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신랑으로서 오게 될 때 신부로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이룬 가정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10억에 가까운 기독교인들은 공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에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는 공산주의에 전부 걸려들고 말려들어가서 자기 처신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서글픈 사정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나라도 없고 이 땅 위에 있어야 할 하나의 터도 없는 것입니다. 목적은 오직 자기 한 사람만 믿고서 천당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시한 사람들을 천당에 데려가지 않습니다. '나만 믿고 천당가겠다'고 '내가 요렇게 하늘을 위해서 일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은 내가 구원받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원치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전부 개인주의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과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천당가겠다는 사람은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리고 내가 요렇게 해 가지고 천당에 가겠다는 사람은 절대 천당에 가지 못합니다.

예수의 사상이 그것입니까? 내가 이렇게 해야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해서 아버지의 아들딸이 됐다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아들딸 된 자리에서 책임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나만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 천당 못 갑니다.

'세상을 다 잃어버려도 나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기도해야지'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한 사람을 세워서 악한 열 사람을 굴복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악까지도 슬퍼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안고 나가게 함으로써 악이 스스로 굴복하고, 절대 복종할 수 있게 하여 진정한 승리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땅에서 승패의 결정을 해 가지고 악한 나라를 선한 나라 앞에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그런 하나님의 아들딸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나라의 채찍에 맞아 몰리고 죽어가면서도 아버지의 일을 해야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몰리고 고난을 당하며 죽어가는 것은 네가 주도하고 네가 부리던 그 권세와 판도를 하나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악의 세력을 대하여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죽어서라도 그 뜻을 이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 역사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나왔습니다. 이런 기독교는 망해야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선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거예요. 선과 악을 중심삼고 볼 때에 선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여러분은 선악이 어떠한 것인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지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아 천당에 가는 것이다' 하는 식으로 하나님은 그렇게 쩨쩨하지 않습니다. 구원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안식의 터전에서 승리하고 살아가야 됩니다. 지상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사람을 말하게 될 때 혼자만 구원받겠다고 하고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을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가정이면 가정 전체가 자기를 위해줄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그 위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을 맞고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이 어떤 것이냐? 예를 들어 여러분이 좋은 친구라 할 때, 그 친구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양보해 주는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냐, 아니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남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는 사람이냐? 이렇게 볼 때 어느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겠어요, 자기를 희생시켜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겠어요? 선한 사람은 왜 흥하느냐 하면 선한 사람은 절대 빚을 지거나 신세를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친구란, 만나면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까지 상대를 위해 쓰는 친구입니다. 자기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어려운 줄 모르고 친구의 부탁을 자기 일보다 더 들어 주려고 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그런 친구라면 그가 도망을 가더라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친구라도 보이는 것마다 빼앗고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서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그 친구가 오라고 해도 도망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선악의 기원은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희생시키고, 자기를 위해서 빚을 지우던 친구가 죽게 되면 '에이 그 녀석 잘 죽었다'고 하면서 시원하다고 하지만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상대를 위해 애쓰던 친구가 죽게 되면 그가 죽은 후에도 무덤 앞에 서서 추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남을 위해 사는 친구는 당장에 친구에게 신세를 지우는 것 같지만 그 아들딸이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이 연결되고 그 나라가 연결될 수 있는 추후의 터전이 여기에서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요? 그 자리는 자기를 내세워 주장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은 남을 위하여 사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면 그것은 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