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집: 뜻길의 가치 1974년 06월 09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149 Search Speeches

선민이란 하나님께 '붙이기 위한 국가적 터전을 마련하" 것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개인을 접붙이려면 개인을 접붙이는 운동을 해야 되고, 가정을 접붙이려면 가정을 접붙이는 운동을 해야 되며, 국가를 접붙이려면 국가를 접붙이는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접붙이려면 접목에 잘 붙을 수 있게끔 훈련을 시켜 가지고 갖다가 접붙여야 되는데, 이것을 한번에 접붙여야 될 입장에 있다면 얼마나 어렵겠나 생각해 보세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주류사상을 따라 이 뜻을 세우기 위한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 형태를 하나님도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주도적인, 주류를 대표해서 하나님이 붙이는 데에 붙을 수 있게 준비를 하고 그 터전으로 마련한 것이 선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올 때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런 선민의 사명이 있었지만 책임을 못함으로써, 접을 못 붙였기 때문에, 그 밭에서 접붙일 수 없게 되었기에 세계를 향해 제2차적인 준비를 한 것이 영적 이스라엘권인 기독교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예수님이 올 때에 예수를 갖다 붙이기 위한 틀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접붙여야 할 본래의 나무떨기가 구새가 먹고 벌레가 먹어, 하나님이 볼 때 과연 완전한 틀거리를 다할 수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었더냐 이거예요. 접붙일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국가기준이 이루어지지 않고, 전부 다 썩어 버린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할수없이 다시 터전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접을 붙이지 못하고 감으로 말미암아 다시 접붙일 수 있는 터전을 준비한 것이 기독교다 이겁니다.

그러면 지금 끝날이 되어 들어오는데, 이 기독교에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접붙일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국가가 있느냐는 거예요. 지금 보게 되면 전세계 기독교는 몰락 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걸 볼때, 과연 주님이 이와 같이 접붙이기 위해서 온다면, 접붙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개인, 진정한 의미의 가정, 진정한 의미의 씨족, 진정한 의미의 나라가 있느냐 할 때, 우리는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