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천국을 찾아 이루려는 슬픈 아버지와 아들 딸 1959년 05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4 Search Speeches

신앙자의 본질과 하나님의 소원

여러분! 이제 여러분에게 진리의 길을 찾아 신앙노정을 부활시키려 하는 갈급한 심정이 있다 할진대는 , 예수님께서 슬픈 감정으로 말씀하시던 신앙관념의 최후의 한계선은 어디인가를 알고 그 한계선을 넘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천주의 슬픔을 해원해야 되고 인류의 슬픔을 해원해야 될 중간적인 책임자였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픈 심정이었습니다. 인류의 슬픔이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의 심정을 느꼈고, 나아가 하나님의 천만 가지의 슬픔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예수님의 슬픈 감정을 통하여 나타난 말씀에 대한 인간의 믿음의 기준이 서야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혔던 인연이 다시 맺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신앙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웃음의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눈물의 종교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에 대해 한가지를 알고 보면 가슴이 막히고, 두 가지를 알고 보면 자기도 모르게 통곡이 나오고, 알고 알고 또 알고 보면 자기 스스로가 제물되어야 할 입장임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감정에서의 신앙, 그런 감정에서의 실천을 하게 되면 죽은 인간을 살릴 수가 있게 됩니다.

하늘 앞에 제아무리 훌륭한 공적을 세웠다 할지라도 그 공적의 결과는 자기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로 말미암아 된 것이에요.

그러면 섭리의 실마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 가? 인간의 마음이 하늘의 슬픔과 통하는 그 순간에 새로운 섭리역사는 개척되어 쌓여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믿음과 실천의 노정을 걸을 것을 촉구하시면서 6천년의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셨습니다. 온 인류를 대해 그러한 존재가 되기를 간곡히 바라셨습니다. 온 인류 앞에 하나님 자신을 100퍼센트 세워 드릴 수 있는 실체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늘은 한없이 믿고 행하고도 그 사실을 잊어 버릴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고 계십니다. 하늘의 표준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믿으라는 말이 쓸데없고 실천하라는 말이 필요없는 그런 존재를 찾으신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통해 주신 말씀을 세울 수 있고 실천의 명사를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를 찾아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하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 그 한계성을 넘어서 실천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