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집: 예수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 1970년 01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8 Search Speeches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그와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하나님은 이 한국 강토에서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신령한 역사를 해 나오셨습니다. 해방이 되기 전 1930년대와 1940년대를 중심삼고 하나님은 이를 준비시켜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기성교회는 그런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내적인 사연을 받들고 내적인 뜻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가정들을 통해서, 혹은 수많은 개척자를 통해서 이런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엊그제, 여러분이 말씀을 들어서 알겠지만 그 철산의 움직임이라든가, 평양의 움직임이라든가, 혹은 원산의 움직임과 같은 이런 모든 움직임은 그 시대적 환경을 대치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받들지 못하면 안 되겠기에 그것을 가일보 전진된 환경에서 하나님은 준비시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역사하신 내용과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역사하신 내용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신 것과 한국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신령역사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 가정과 요셉 종족이 이루어야 할 그 환경의 내용을 재현시켜서 싸우는 통일교회의 역사는 기독교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독교가 영향을 받고 따라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반기를 들고 이와 같은 움직임을 끊어 버리고 막아 버리는 일에 앞장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뜻을 세워야 할 여러 신령한 단체들로 하여금 요셉 가정과 같은 사명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인 모든 탕감의 조건을 맡고 나설 수 있는 가정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백 퍼센트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사자들은 나타나는 결과는 알았지만 그 내용을 알아 가지고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숱한 역사노정을 통해서 이 시대권내에 나타난 그 집단들의 역사는 십여 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역사의 배후에는 6천년의 기나긴 섭리의 내용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새로이 오시는 주님과 완전히 연결되어 모든 사회와 환경을 여기에 일치시켜 하나의 방패가 되고 완전한 축이 되어 그 주위를 완전히 지켜 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더라면, 그러한 터전 위에서 새로운 역사를 출발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되기만 하면 기독교가 믿건 안 믿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걸어온 걸음에서도 예수님이 걸어가던 때와 마찬가지의 환경에 다시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대교가 반대하고 요셉 가정이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 한국 강토에서도 기독교가 반대하고 신령집단들이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아 승리를 결정하여 역사적인 모든 실패했던 기준을 다시 수습할 수 있는 제1기준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는 수난의 길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직접 부딪치게 되면 이것은 내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요, 외적인 입장에서도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즉, 양면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핍박과 육적인 핍박이 일시에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개척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 있어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요셉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기틀입니다. 지금까지의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거치는 조건을 연결시키지 않고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외적으로 보면 세 아들의 가정과 마찬 가지의 기준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조건을 제시하여 내적인 기준을 결정지음으로써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대 사회적인 싸움을 전개할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