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집: 필히 가야 할 운명길 1982년 10월 17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26 Search Speeches

인간의 운명길은 한계가 있지만 하늘의 운명길은 무한해

그러면 우리 인간은 왜 세계적인 운명길을 추구해 가느냐? 그분이 제일 높고 귀하고, 그분이 제일 이상적 표준이 되고, 원인과 동기 혹은 결과가 되어 있으니 그분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시작할 수 있고, 새로이 출발할 수 있고, 그분과 더불어 새로운 결정을 할 수 있고, 결론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적인 것은 이 모든 전체를 결정지을 수 없는 입장, 운명권을 중심삼고 볼 때 과정에 머물게 마련이다 이거예요. 그 안에서 돌게 되어 있지, 이것을 뚫고 새로운 차원으로 어디에 연결지을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천운을 추구하고 천운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게 도대체 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말이예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능치 못함이 없고, 거기에는 제재라는 한계점도 없거니와 선도 없고 형태도 없다는 거예요. 거기에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랑이 가야 할 운명길은 영원히 연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이상이 있다면 그 이상이라는 것은 그분으로부터 새로운 영원과 연결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인간과 하늘이 다른 것이 뭐냐? 인간은 한계적 운명길을 추구해 가는 것이요, 하나님은 무한한 운명길을 운행하는 것입니다. 추구하는 게 아니예요. 운행하는 것입니다. 추구와는 다르다구요.

이렇게 볼 때 1초가 암만 빠르게 째깍째깍하며 가더라도, 아무리 바쁘다고 하더라도 어디로 가는 운명이냐? 1분의 길을 따라가기 위한 것이다 이거예요. 1분도 아무리 바쁘게 째깍째깍하며 쉬지 않고 가더라도 그 운명길은 별거 없어요. 한시간을 따라가야 된다 이거예요. 한 시간도 별수없어요. 24시간 하루를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루는 한 달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 달은 1년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1년은 1세기를 따라가야 되는 거예요. 백 년은 천 년을 따라가야 되고 천 년은 만 년을 따라가야 된다는 이런 논리가 형성되는 거예요.

백 년 가운데에는 십 년이 포함된다구요. 십 년 가운데에는 일 년이 거기에 들어갈 수 있다구요. 자동적으로 포괄된다구요. 또 일 년 가운데에는 열두 달이 포함된다구요. 달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달 가운데에는 하루가 포함되고, 하루 가운데에는 시간이 포함되고, 시간 가운데에는 분이, 분 가운데에는 초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러면 운명길 가운데에서의 종막점, 한계점이 어디냐? 이것은 일 년의 날 수를 중심삼고 볼 때, 횟수를 중심삼고 볼 때 영원한 연한을 연결시킨다고 보는 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이 반드시 가야 할 운명길이 있다면 우리는 어디 가서 정착할 것이냐? 어디 가서 머물고 싶으냐, 이게 문제예요. 요즈음 젊은애들을 많이 짝 지어 줬는데 말이예요, 그때가 제일 심각하다구요. 남자가 어디로 가요? 남자의 운명은 여자를 찾아가야 되고, 여자의 운명은 남자를 찾아가 만나야 되는 거라구요. 그때의 심각한 도수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래, 둘이 만나 가지고 그 다음 가는 그 운명길이 편안한 길이냐, 어려운 길이냐, 쉬운 길이냐, 좋은 길이냐?

오늘날 이 변하는 시대, 불신의 시대에서 제반 문제를 놓고 서로가 상극 상충이 빈번이 벌어지는 환경권 내의 두 패가 가는 데에는 편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도 있고 오만가지 잡탕이 다 맺혀 있다 이거예요. 풀이 있다면 무슨 풀? 칡 뿌리 같은 풀이 엉클어져 있다 이거예요. 그놈이 얼마나 엉클어져 있는지, 배가 암만 힘이 센, 몇백 마력의 모터를 돌려 가지고 밀더라도 가다가 후퇴할 만큼 엉클어져 있다구요. 그래도 가야 된다 이거예요. 그게 쉬운 거예요? 그러니 '아이구 나 죽는다' 하는 야단법석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운명길이 얼마든지 있다 이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은 생각지 않고 만나는 것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