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우리의 책임 1971년 02월 14일, 한국 중구교회 Page #151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셨던 예수

그런데 우리의 조상이 그 책임을 짊어져야 되는데 '나는 싫소' 하고 책임전가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완전한 맏딸과 완전한 맏아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천지간에 그러한 분이 딱 한 분 오셨는데 그분이 어떠한 분이냐 하면 30세가 넘도록 장가도 못 간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잘하는 것 없이 그저 나무나 베어다가 툭툭 깎는 까뀌질이나 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분은 딴 사람의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내 아버지야!' 하는 이런 마음을 갖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얼마만큼 했겠습니까? 한번 결심했다고 그 마음에 자리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결심이 예수의 마음에 자리 잡히기까지는 얼마나 몰두했겠느냐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악마가 그런 생각을 못 하게끔 혼란을 주고, 주위 환경이 부정하고, 잡아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붙든 그 하나님은 내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이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죽음으로써 입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아들은 아들인데 독생자다' 한 것입니다. 아들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 그 말이라구요.

그러면 이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살림살이를 몽땅 책임지시겠다는 말이예요, 안 지시겠다는 말이예요?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하시게 되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겠다는 입장이예요, 안 하겠다는 입장이예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야 이놈아 ! 네가 하나님의 독생자야.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타락된 이 세계를 어디 한번 구해 봐라.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르는지 한번 당해 봐라!' 하면서 갖은 시험과 핍박을 가했습니다. 죽음길이었지만 예수님은 초지일관이었습니다. '죽음아 오너라 ! 생명을 위협하는 창칼로 가로막더라도 나는 이 뜻길을 간다. 내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승리할 것이다. 나 이상 수고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한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장자다' 하는 그런 입장에서 생명을 바치고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창으로 가슴을 찌른 그 원수들에 대해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 : 34)"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기도냐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경지까지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남자로서 얼마나 멋있는 일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남자가 생각을 하고 활동에 옮기려면 생사를 초월해서 그 정도는 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 남자들은 시시하게 계집애들을 데리고 산으로 놀러 다닙니다. 그런 녀석들은 나중에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 나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녀석들이라는 것입니다.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죽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뜻을 품고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뜻 앞에 반대적인 역사를 하면 '죽어라' 이겁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두고 볼 때 예수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를 통해서는 그 내용을 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못살게는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난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길은 생명이 엇갈리는 길이 아니라 보다 진보적인 생명길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