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집: 우리들의 각오 1960년 11월 0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78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지상- 오신 목적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의 뜻을 따라 역사적인 환경을 수습하고 섭리적인 대표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심정적인 공판대 앞에 승리자로 설 수 있었던들, 예수 이후 2천년의 섭리는 연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의 심정으로 결정짓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해결짓는 것은 어느 누구도 주관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는 사탄도 꺾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받은 사람은 사탄이 먼저 압니다.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통하고 심정적으로 체휼해야 합니다. 심정적인 체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아버지 앞에 못 갑니다. 그런데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눈물로 세우고, 하나님의 피로 세우고, 하나님의 땀으로 세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눈물이 남아 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피가 남아 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땀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그것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모두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런 민족 앞에 예수님은 재무장하여 나타나셨나니 그분의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그 시대 사람들을 끌어다가 천국 보내는 것이요? 아닙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눈물, 역사적인 하나님의 피와 땀을 해원해 드리는 것이 예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 사명을 못하면 하나님의 뜻은 종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뜻을 이루는 데는 반드시 역사적인 민족이 필요합니다. 세계 인류를 대신해서 하나의 이념국가를 세울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민족의 기반 위에 예수님이 그들이 모르는 가운데 흘리신 하나님의 눈물과 피와 땀이 그들의 몸 가운데 어려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실제로 보여 주어서 그 민족과 하나 되었던들, 기독교 2천년 역사의 소망인 재림사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서 이 땅에 오셨나니 무엇을 목적으로 오셨느뇨? 택한 민족이 역사적인 내용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오셨고, 그 다음에는 섭리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無形)의 신(神)으로서 눈물 흘리고 무형의 신으로서 피와 땀을 흘리는 것을 개의치 않으셨으나, 그것을 인간 앞에 실체로 보여 주지는 못하셨습니다. 그것을 실체(實體)로서 인간 앞에 보여 주고 실체로서 인간을 품어 주기 위해 인류의 참아버지로 오신 분이 예수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어떠한 절대적인 각오 밑에서 민족을 지도하는 한, 하늘을 따른다는 이스라엘 민족도 절대적인 각오 밑에서 단결하여 메시아를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던들, 그들은 오늘날처럼 비참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상에는 아직까지 유대교가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죽인 선봉자들이요, 핍박자들이요, 사탄의 이용물로서 하늘을 배반한 그 유대교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은 아직까지 원수를 못 갚았습니다. 원수를 못 갚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