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수욕의 상처 1969년 12월 0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6 Search Speeches

타락한 인간이 가야할 공통적인 길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그런 인연을 알았다고 해서 완전한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드시 원수의 세계에 들어가서 수욕을 당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연이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복귀섭리역사입니다. 복귀되는 자리는 죽음의 자리입니다.

내가 잘살기 위해서,내 욕심을 중심삼은 삶의 보람을 찾아 나선 것이 타락의 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죽음의 자리를 찾아가겠다는 결의를 하고 나서는 데서부터 소생의 길이 트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죽음의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 안에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동기들, 혹은 그 이웃이나 친척 혹은 그 민족 앞에 죽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 거리가 먼, 나와 내 민족을 반대하는 무리 앞에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듯 반대하는 세계에 들어가 가지고 반대받는 자리에서 죽게 될 때, 세계앞에 상처를 입은 하나님은 그를 동정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효의 길은 하늘권내에만 머물면서 하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의 세계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효자라는 인정을 받아 가지고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제일 빠른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최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 뜻은 사는 것이요, 아버지의 뜻은 죽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효자를 만들고 충성의 아들을 만들려면 아들의 뜻대로 해주어야 할 것인데, 하나님은 어찌하여 거기에 반대의 뜻을 세워 가지고 예수님을 내몰게 되었던가? 하나님을 배반했던 인류의 조상과 같은 입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그를 외면하고 사탄도 그를 배반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배반하고 하늘도 같이 배반했기 때문에, 만일 하나님이 동정하게 되면 사탄도 동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몰게 된 것이고, 또 그것이 새로운 역사의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운명하기 직전까지는 사탄의 기세가 등등하였지만, 예수님이 죽고 난 후에는 머리를 숙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과 반대의 입장을 취하시어 이 길을 걸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세계를 거슬러서 새로운 명령의 인연, 새로운 출발의 동기가 솟구치는 역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슬프게 해 놓고 타락한 아들딸, 즉 사탄이 끌어 가며 좋아하던 아들딸은 죽어 버렸습니다. 사탄에게 이용당했던 그 아들딸, 하나님께 절망을 드렸던 그 아들딸은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소원이 출발됨과 동시에 사탄이 희망했던 길은 절망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를 통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이 길은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공통적인 길이 아니겠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하게 됩니다.

수욕의 상처는 언제 사라질 수가 있느냐? 원수에게 짓밟힌 역사를 밟고 넘어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한 전체를 동원해 반기를 들고 공격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타나면, 하나님은 수욕의 날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그렇지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