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우리의 사명 1970년 03월 11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67 Search Speeches

승리적 기준을 갖"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가

오늘날 복귀도상에 서 있는 우리들은 과거에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복귀도상에서 생명을 걸고 싸웠지만 실패하여 비운 속에 역사와 더불어 흘러간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그들이 간 길을 따라가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소망의 기준은 그들이 바라보던 그런 민족적 기준이라든가 국가적 기준이 아닙니다. 그런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세계적 기준 앞에 선 우리인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하게 될 때, `나는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뜻 앞에 있어서 일차적 승리를 갖지 못하고 패자로서 서러움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들의 추앙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항시 하나님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승리적 기준을 갖추지 못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승리적 기준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아는 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늠름해야 되고,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또한 그러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공격하여 타파할 수 있는 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지금까지 지식을 갖기 위해서나 실천을 하기 위해서 수고한 모든 기준이 상대적으로 엇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나아가는 방향에 방해되는 것이 있을 때, 내가 갖춰 온 실력과 세운 실적으로 일시에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 세우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사명과 우리의 책임이 완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선조들은 왜 실패했느냐? 그들은 복귀의 도상에 서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는 뜻을 중심삼고 완성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지식 기반이 없었습니다. 알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알고 있는 것도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실천을 먼저 해 가지고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라 실천함과 동시에 결실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니 실천하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는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실천이 없으면 그 아는 것이 나에게 보탬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가 맺어집니다. 관계라는 것은 상대의 여건을 통해서 맺어지는 것이니, 독자적인 입장에서는 관계라든가 인연이란 명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알고 나서는 실천을 해야 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번 실천해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실패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달려야 할 코스가 어떻게 되어 있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며,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또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하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발할 때는 선수들이 전부다 스타트 라인에 서 가지고 뛸 것인데, 어떤 때는 갑이라는 사람이 앞서서 달릴 것이고, 어떤 때는 을이라는 사람이 앞서서 달릴 것이라는 것을 다 아는 것입니다. 또한 전환점이 있으면 전환점을 돌아와야 할 것이며, 결승점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누구든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 승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자기가 훈련을 해 가지고 그 누구보다도 더 빨리 달려서 목적지에 이르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가 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실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원리 자체를 몰라서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알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어떤 것이 더 어려우냐? 아는 것은 쉽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조금만 노력하면 이 원리책 한 권은 다 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실천은 생명을 걸고 해야 됩니다. 아는 것은 어느 기간을 통해서 준비할 수 있지만 실천하는 것은 반드시 생명을 투입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요만하니까 한두 번 그저 손만 움직이면 되지, 발만 움직이면 되지, 내가 그저 왔다갔다하면 되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복귀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 복귀섭리의 인연은 자기의 어떠한 부분을 움직여 가지고 완성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조그마한 개인의 승리의 기반 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승리한, 개인이 사명을 완수한 그 기반 위에서 출발하는 것이지,그 이하에서는 출발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이 승리할 수 있는 입장까지는 생명을 바쳐서라도 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적당히 `며칠 몇 해 동안 하면 되겠지'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복귀를 완수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의 한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한계선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는 나 홀로 넘어가는 것이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국가를 복귀하더라도 그 국가 자체로서 넘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거쳐 나가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