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끝날에 남아질 아버지의 참아들딸 1959년 07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9 Search Speeches

끝날의 심판 내용

끝날 심판의 한때는 올 것입니다. 심판의 한날이 오거늘, 그날 하늘은 무슨 내용을 갖고 나타날 것이고. 나는 이런 영광과 이런 행복의 요소를 갖고 있는데 너희는 왜 이런 행복과 이런 영광의 요소를 갖추지 못했느냐 하고 묻지 않습니다. 심판의 내용은 6천년 동안 싸워나오신 슬픈 인류의 역사와 슬픈 하나님의 역사, 고통스러운 인류의 역사와 고통스러운 하나님의 역사를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노정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손자국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늘 앞에 아들의 영광을 갖추어 서고자 하는 자, 딸의 소망을 갖추어 서고자 하는 자에게 너는 이 역사와 더불어 얼마나 슬퍼했으며, 이 역사와 더불어 얼마나 고통을 당하였는가 하고 하늘은 물을 것입니다. 그때 `없습니다' 하는 사람은 아들의 영광을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의 손과 발에는 못 자국이 있습니다. 예수의 머리에는 가시관이 씌워져 있고, 예수의 심장에는 창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는 죽었으되 슬픔의 왕자요 고통의 왕자로 합격되어 하나님의 한을 청산하기 위해 죽음의 고개를 넘어가야 된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신자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심정에 있어서 합격자였으니 심정의 지도적인 권한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구주는 무슨 구주예요. 몸뚱이 구주? 아닙니다. 뼈에 사무쳐 그립고 또 그립고,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심정의 구주인 것입니다.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그 심정을 붙들고 하나님의 슬픔을 밀어내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고통을 이 인간세계에서 밀어낼 수 있는 심적 기준, 일편단심의 심정에서 예수는 구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갖고 다시 한 번 헤아려 봅시다. 끝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끝날은 기필코 오고야 말 것인데, 이 끝날에 하늘은 무엇을 가지고 심판행사를 벌이겠습니까? 똑똑히 아십시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믿고 있는 분이나 믿으려 하는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겠습니다. 그 끝날에 하나님은 기쁨의 내용으로 웃으면서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도 그럴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오 주여!' 하며 붙들려 할 때 붙들지 말라 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슬픈 예수의 심정을 통하고, 고통 당한 예수의 심정을 통하여 천륜의 고통과 슬픔의 노정을 통하고 난 후에야 예수를 붙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단단히 알아야 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슬픈 눈물을 흘리고 고통당하는 경지에 들어가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될 때 아버지의 성상을 한 번 바라보십시오. 아버지의 눈은 6천년 동안 눈물이 그치지 않은 눈입니다. 아버지의 귀는 6천년 동안 모든 원수들의 조롱과 비난과 비소를 끊임없이 받은 귀입니다. 아버지의 입은 6천년 동안 하시고 싶은 말씀도 못했거니와 굶주린 인류와 더불어 굶주림에 허덕이신 입입니다. 아버지의 손길은 피눈물이 어려 있고, 피 땀이 어려 있는 손길임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아버지의 발걸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의 골고다의 험산준령을 몇 백번 몇 천만번 넘은 발걸음입니다. 아버지의 몸은 상처를 입고 억울하게 매맞은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이 아버지는 누구 때문에 그랬겠는가. 불쌍한 인류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황공망극한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은 천만번 죽어도 아버지의 서러움을 막아낼 수 없으며, 나 같은 죄인은 천만번 죽어도 아버지의 눈물을 씻어드릴 수 없습니다' 응당 이런 마음에 사무쳐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불러 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 할진댄 회개, 회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