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인생길을 가는 우리 1959년 09월 0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99 Search Speeches

인간을 통해 자기를 '현하고 싶어하시" 하나님

피조물이지만 자가창조의 진리적인 면, 자가창조의 심정적인 감성, 자가창조의 생명적인 감성, 자가창조의 사랑적인 감성을 자기 분량만큼 느끼게끔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받을 것이 아닙니까? 죽은 모습을 하고 있다면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진리적인 모양이든가, 심정적인 모양이든가, 마음의 모양이든가, 생명적인 모양이든가, 사랑의 모양이든가 자기의 본성을 근거로 한 자동적인 발동력을 가질 수 있는 자극을 느낀 자라야만 하나님이 `오냐 내 아들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겠어요?

까딱 잘못하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본성적으로 부여된 기반 위에서 자기 자신의 생명, 자기 자신의 진리, 자기의 자신의 마음의 힘, 자기 자신의 생명의 충격 등 자가자칭할 수 있는 원천적인 내용, 동기적인 내용을 갖추어야 절대자 앞에 상대적인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면 그저 까먹고 세워 주면 쓰러지고 하는 자들은 안 됩니다.

오늘날 도피성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인생행로에 있어서 나의 모습은 어떤가. 하늘은 무엇을 바라고 계신가. 우리 인간이 말씀하신 진리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실체가 되기를 고대하시며 6천년 동안 하나님은 허덕이셨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경지에서 들어가게 될 때 그리스도가 그런 것처럼 `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내 안에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체험해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동기적인 느낌을 가지고 이 사망의 길을 멋지게 가려는 도피의 왕자는 붙들 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는 진리와 더불어 움직이고, 우리의 마음세계와 화하고 생명원칙과 인연을 맺어 무한히 운동하고, 심정세계와 더불어 무한한 창조의 묘미를 나타내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늘이 절대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서 자기의 가치를 논위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논위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시겠어요. 여러분 보십시오. 내가 만일 어떤 책을 써서 `거기에 아무개 아무개는 이렇다'고 했을 때에 그 사람이 `야 이놈아! 너 기분 나쁘게 왜 그러느냐' 할 것 같애요? 어때요?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그대의 마음이 이렇지 않습니까' 하며 좋은 곡조로 노래를 불러주면 어떻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떨 것 같애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자기의 심성에 내재해 있는 모든 자극적인 감성을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드러내어 가지고 그 가치를 보고 기뻐하시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없어지고 망합니다. 자기의 가치를 100퍼센트 노래한 자들은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의 효자, 열녀, 혹은 일개 종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의 충신들도 그 국가가 세계 사조에 휩쓸리고 융합되고 망하게 될 때에는 함께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도피성을 향해 달리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개인적인 것과 자기 중심적인 감정은 모두 끊어버리고 가야 합니다. 6천년 역사 이래 그런 사람이 나왔다면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 주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그런 사람이 안 나와서 한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일에 한국에 그러한 청년이 나온다면 하나님을 이 한국에 모셔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망언이 아닙니다. 전파를 캐치(catch)하는 수신기가 강력히 끌어들일 수 있는 내용을 갖출 때는, 모든 힘을 받아 가지고 다시 발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원동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금까지 자신을 붙들고 자탄하였고, 나 하나에 국한된 가치를 논위하며 슬퍼하였습니다. 처량합니다. 일개 가정, 일개 국가, 세계의 주의 사상에 자기의 목을 걸고 허덕이는 인간들의 무가치한 모습을 바라보고, `야 이놈들아, 비켜!' 하고 소리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오시는 용자가 메시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