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끝날에 남아질 아버지의 참아들딸 1959년 07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6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세우시려" 참아"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를 바로 알고 모시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뇨.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하나님 품에서 자라지 못하게 된 후 사탄과 대적하여 싸워 나온지 4천년 만에야 비로소 유대나라 앞에 나타난 예수였음을 이스라엘 민족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그 예수 앞에 굴복했다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올 때 실패한 것도 승리요, 노아 가정이 실수한 것도 승리요, 아브라함이 제물 실수한 것도 승리이며, 라벨이 죽은 것도 승리로 귀결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실체였습니다. 역사적인 산 실체예요. 섭리하시면서 찾으시던 4천년의 전의 산 실체. 아담은 죽었으나 그를 세워나오시던 아버지의 심정은 죽지 않았기에 그것은 산 실체입니다.

끝날에는 많은 인간들이 자신을 중심삼고 `나는 우주의 중심이다' 하는 식의 종교관을 갖고 나옵니다. 그런데 4천년을 거쳐 6천년을 역사해 오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거예요. 아담이 실수했기 때문에 대신 보내신 예수는 어떤 분이냐. 제2 아담 입니다. 예수님을 놓고 하나님이니 뭐니 하고 있으나 그게 아니에요. 성경에도 예수를 후아담이라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찾으시는 내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참된 아들은 제3아담입니다. 제3아담의 수속이 끝나 참아들의 입장에 서기 전에는 어느누가 아무리 무슨 신부라 무슨 양자라 해도 안 됩니다. 예수도 아들의 영광을 갖고 이 땅 위에 왔지만 아들의 행세를 다 못했습니다. 행세를 하려면 하늘의 수속을 마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들만 가지고 안 됩니다. 신부를 갖추어야만 수속이 끝납니다.

에덴동산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어요? 아담과 해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참조상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참조상을 잃어버렸으니 참조상을 잃어버렸으니 참조상을 복귀해야 합니다.

예수는 아버지격입니다. 인류의 참아버지격이예요. 그리고 성신은 어머니 신입니다. 인류의 참어머니. 이와같이 참아버지 참어머니를 영적으로 세워 놓고 이를 실체 형상으로 이 땅 위에 나타내려는 것이 재림의 목적입니다.

인류 앞에 참다운 아들 딸이 나타나는 때가 끝날이거늘, 그 때는 어떠한 때인가. 참조상을 잃어버림으로 타락한 후손이 되고 참부모와 혈통적인 인연을 맺지 못했으니, 반대의 경로를 통해서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아들 딸을 찾는 때입니다. 거꿀잡이 역사, 복귀역사로서 인연을 맺어 그들을 양자로 승진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만약 이 말을 듣고 틀린다고 생각하거든 영계에 가서 항의하십시오. `아무때 아무 아무개가 이렇게 말했는데 그 말이 맞소 틀리오?' 하고 물어보면 틀림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망상적이고 공상적인 신앙을 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관념적인 신을 믿고 그 이념 밑에서 사는 시대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뼈와 살이 심정에 부합되는 기준을 갖고 아버지라 할 수 있고, 그 아버지의 6천년 역사하신 심정을 오늘 내 심정에 귀일시켜 그 심정적 기준을 통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늘을 찾아나가는 인류, 혹은 목적의 세계를 찾아나가는 인류는 이런 길을 가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삼강오륜을 세웠던 것입니다. 천적인 마음을 다하고, 충신이 되라, 열녀가 되라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양에서는 무엇으로 보든 내적인 사조를 갖추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은 외적입니다. 외적으로 돌아 들어옵니다. 두고 보십시오.

양자들이 출세하는 때는 지금까지의 20세기 문명이고, 앞으로 참아들딸이 출세하는 때는 이상세계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럴 거 아니겠어요. 옛날에는 남의 자식들이 잘 살던 때였고, 오늘날은 예수의 이념을 중심삼고 민주진영을 중심한 양자들이 잘 사는 때이며, 이 시대를 넘어 참아들딸이 잘 사는 때가 크리스찬들이 바라는 재림시대요 이상시대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리에 남아질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때, 한 시간에 참아들딸의 명분을 갖고 나타나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나는 수십년을 잘 믿었습니다' 하며 배를 쑥 내미는 소인배는 안 됩니다. `아, 나는 아무 교회 목사요, 아무 교회 지도자요, 나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를 따라가게 되었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예수의 이름을 중심삼고 기쁨의 요소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은 전부 안 됩니다. 왜 그러뇨?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6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섭리해 나오시면서 하루 한 시간도 기쁨의 날을 보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참아들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가 아들 딸도 찾지 못하고 무슨 기쁨이 있다는 말입니까?

역사를 지나오면서 인류는 기쁨의 시간을 갖고 향락한 사람들이 많았을지 모르지만, 어떤 집권자들은 자기의 권력을 중심삼고 하나님 대신 영광을 누렸을는지 모르지만, 4천년, 6천년 역사를 허덕이고 허덕이면서 참아들딸이 그리워 찾아 헤매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시간이 없었습니다. 영광을 누리고 기쁨을 누려야 할 하나님은 아직도 그런 한 시간을 갖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