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야외예배에서 1958년 05월 11일, 한국 삼청공원 Page #231 Search Speeches

예수의 심정을 몰랐던 제자"

변화산상에서의 예수는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변화산상에서 있었던 사건과 장면은 하나님 또는 인간의 어느누구도 모르는 비장한 장면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자기를 중심하고 헤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변화산상의 세 제자들은 찬란히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눅 9:33)"라고 하면서 거기에서 영원히 머물자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세제자는 나타나는 환경에서 즐기려고 했지만 예수님의 심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나타난 변화산상의 환경이 좋은 환경이었지만, 그 환경을 대하는 예수님의 심정은 역사적인 내적 서러움과 미래의 서러움에 사무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제자는 예수님이 이런 서러움의 심정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과거의 역사적인 서러움에 젖어 있는 배후관계의 모든 것을 넘어 최후에는 예수를 다리 놓아 하나님을 붙들고 담판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겠습니다. 또 슬퍼하는 이 민족의 배후에는 민족을 대신하여 숨은 제단을 쌓아 놓고 정성들이고 있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단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제사장과 같은 직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21년간 남 모르는 기도를 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아브라함에서부터 3대에까지 연결지어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민족을 위한 탕감의 노정을 묵묵히 걸었습니다. 모세도 역시 민족을 위해서 바로 궁중에서의 40년 생활과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간의 기도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민족을 대한 슬픈 기도를 하는 교단과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들에겐 이미 제사장적 직분이 주어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여러분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하늘 앞에 담판의 기도를 해 본일이 있는 가 하고 물을 때,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라도 그런 결심을 갖고 끝날을 책임질 수 있는 역군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있는 자리가 그런 환경이 못 되었다 할지라도 머무는 환경에서 실천해야겠습니다. 지역 지역을 책임진 변화산상의 예수와 같은 성도들이 많이 나와야 그리스도의 해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옛날의 세 제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 예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때와 지금과는 시대적으로는 먼 거리에 있으나 예수님의 심정과 직접적인 인연을 갖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후신자가 되어야 통분한 예수님의 심정을 해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변화산상의 영광을 그 사람에게 인계시킬 것입니다.

사탄 대한 하늘의 정병으로 내세워 가지고 민족과 교단과 종족을 대신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되어 그런 사람으로 구성된 민족 국가가 되어야 하나님의 한 뜻이 실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이런 모임이 우연한 모임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선지선열들이 역사과정에서 수고한 공로의 제단 위에 나타난 우리인 것을 알고, 마음을 가지되 예수님 이상의 마음과 세 제자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 무리를 하늘은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몰리고 쫓기는 한이 있더라도 내 개인의 구원보다 민족과 세계를 위하는 투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모인 이곳을 세제자와 영계의 영인들이 바라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결심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인물에게 하늘 땅의 뜻이 계승될 것이고 이런 인물을 통하여 그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앞에 변할 수 없는 중심 기준을 세운 연고로 하늘도 예수님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