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찾아오시는 아버지 1960년 05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99 Search Speeches

고난받았으면서도 아"의 도리를 다하신 예수

예수님은 어떠한 사람을 찾아오셨는고? 빌라도와 같은 권세를 가진 자를 찾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기세가 늠름하고 세도가 당당한 제사장 교법사를 찾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가슴을 내밀고 얼굴을 쳐드는 자를 찾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죄가 없어도 죄인과 같은 마음, 먹을 것이 있어도 먹지 않고 입을 것이 있어도 입지 않고 살 곳이 있어도 자기가 살 수 없다는 마음을 갖고, '민족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세계 인류의 사망권을 열어주시옵소서. 민족의 고통을 제해 주시옵소서' 하는 자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민족을 벌주고 책망하며 욕하는 사람을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입장에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눈물짓는 무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러한 곡절로 하나님과 세상이 상반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이 기뻐하는 자리는 하나님이 슬퍼하는 자리이고, 하나님이 슬퍼하는 자리는 세상이 기뻐하는 자리입니다. 유대나라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과 더불어 기뻐할 때는 하나님이 슬퍼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찾고 찾으시면서 허덕여 나오셨습니다. 왕자의 권한을 가지고 이땅에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땅 위의 가장 낮은 자리서부터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귀역사를 잘 알아야 됩니다. 구약시대는 어떠한 시대냐? 종을 시켜서 역사하시던 시대입니다. 천사, 즉 천적인 종을 시켜서 역사하시던 시대입니다. 신약시대는 어떠한 시대이냐? 종의 시대를 지나서 구약시대보다 한 단계 올라간 시대입니다. 신약시대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시고 종들이 터를 닦아서 아들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개척해 놓고 아들을 보내 역사하신 시대입니다. 이렇게 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종은 어떠한 종들이었습니까? 충성을 다하는 종들,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그 시대에 몰리던 종들이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 선지자들 중 택한 이스라엘 백성 앞에 환영받던 사람이 누구 있었습니까? 이렇게 종들 중에서도 몰리는 종들을 통하여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후에 아들을 보냈더란 말입니다.

그 아들은 이 땅 위에 와서 무엇을 했느뇨. 영광을 받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처럼 자기를 중심삼은 기쁨이나 만족을 소망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누구를 찾아가셨습니까? 빌라도의 법정에 가셔서 빌라도와 어깨를 겨루고 천지의 대도를 밝히는 공론을 해보았습니까? 못 해봤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무릎을 맞대고 의논하고, '야! 이녀석아. 너는 하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여 택해 세운 이스라엘의 절개를 유린한 자다' 하고 항의해 봤습니까? 못 해봤습니다. 어느 마을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모아놓고 '너희들은 나와 더불어 영원히 같이 살자'고 해봤습니까? 못 해봤습니다. '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여 너희들을 택해 세우신 것은 나 때문이니,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모셔라' 하고 말해 봤습니까? 못 해봤습니다. 하늘의 독생자, 하늘의 황태자로 추대받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위신과 환경적인 모든 것이 그렇게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좋아서 '오! 잘한다'고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니예요.

이 땅 위에 오신 예수는 4천년 동안 종들이 법도를 따라 천상을 대신하여 충절을 세운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 앞에 자기의 위신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몰리는 처참한 환경에 처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연만은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4천년 동안 아들을 찾아오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아셨기에 죽더라도 하늘 앞에 효자가 되겠다고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예수는 종들이 세워 놓은 절개를 생각하면서 아들의 입장에서 아들의 절개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상에서도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내 몸이 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고 하셨으니 그분을 대신하여 가야 할 곳이 그곳이요, 나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니 그분에 의거한 생활을 해야 하고,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각오한 예수였습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본연의 아버지의 심정 앞에 역사적인 불효의 죄명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그 모든 어러움을 넘고 넘어 아들의 도리를 다 지켜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신이 무엇입니까? 성신은 어머니신입니다. 그리고 성신은 하나님 앞에서 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이 땅 위에 나타나신 분이 예수와 성신입니다. 그러면 예수와 성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당신의 아들은 나요, 당신의 딸은 성신입니다. 당신의 뜻은 땅을 찾는 것이요, 나를 찾는 것이요, 성신을 찾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당신의 뜻은 우리에게 있고 우리의 뜻은 이 땅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할 수 있었기에, 예수가 온 그날부터 하나님의 일이 예수와 성신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이래 가지고 땅 위에 죄를 짓는 민족이 있으면 그들을 대신하여 예수와 성신은 아들딸 된 입장에서 하나님에게 속죄제를 드려온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찾아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끝날이 오면 재림주가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실 것인고? 종의 시대가 지나고 아들의 시대가 지나갔으므로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셔서 무엇을 하실 것이뇨. 인간 개체 개체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불어넣으실 것입니다. 아들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의 마음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신랑으로 오셔서 신부를 맞이한 다음엔 무엇을 하셔야 했는가. 하나님 앞에 가서 축복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민을 품에 품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아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었으니 예수와 성신은 만민을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축복을 받으려면 이 땅에 아버지의 역사적인 기준을 세워 놓아야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는 아버지의 역사를 일으키러 오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