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집: 완성의 정착지 1993년 10월 11일, 한국 제주국제연수원 Page #330 Search Speeches

어릴 적의 선생님

선생님도 어렸을 때 동네에서 유명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반드시 한 것입니다. 소를 죽이겠다면 죽이고 집 같은 데 불을 지르겠다면 불도 지른다구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남자지요? '무섭다'의 반대말은 뭐예요?「'온순하다'입니다.」무섭다는 것과 온순하다는 것은 다르다구요. 아무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다구요. 선생님이 열두 살 때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손에 쥐고 좌지우지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말이에요…. 어머니의 시아버지지요? 어머니가 장남의 아내라구요. 나이가 많아지면 누구든지 잔소리를 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서 거들더라도 무슨 조건이든지 붙여서 잔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머니는 잘 참아 나왔습니다. 그래서 손자인 내가 나선 것입니다. 어머니는 하도 많이 들어 습관이 되어서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한 거예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기합을 주고 교육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이 되면 인사를 하러 가는 것입니다. '잘 주무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지요? 그랬더니 '오늘은 왜 늦었어?' 하시는 거예요. '할아버지, 빨리 오기를 바라십니까?' 했더니. '그렇고 말고. 빨리 오면 더 좋지.' 하시는 거예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빨리 오겠습니다.' 하고 한 시에 간 거예요. (웃음) 한 시에 마루에 올라가니 코를 고는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렸다구요. 쾅, 쾅 하고 놀라 가지고 '뭐야?' 하시니까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한 거예요. (웃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다려, 기다려!' 하는 것입니다. 손자의 인사를 받으려면 옷차림을 단정하게 해야 돼요. 그러니 야단이지요. 서서 기다리면서 '허허허.' 하는 거예요. 그러면 며칠도 안 갑니다. 사흘도 안 가서 '그렇게 빨리 안 와도 된다.'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그 다음날에는 더 늦어집니다. 열두 시쯤에 가는 거예요. 밤 열두 시가 아닙니다. 낮 열두 시쯤에 인사하러 가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하면 '빨리 안 와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하는 거예요. (웃음) 여러 가지가 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시킨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대중을 잘 지도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말이에요, 마을 전체가 선생님을 주목했습니다. 그때는 일제시대였습니다. 일본에 반박하면 바로 사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산업 문사장의 아버지가, 당숙이 '때를 잘못 태어났다. 저렇게 하면 큰일인데….'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 말이 귀에 남아 있어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마을 전체가 주목했습니다.

어디 마을을 통행할 때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마을에 혼자 찾아가서 다 혼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올해는 풍년이 든다. 수확이 좋다 하면 말한 대로 되는 거예요. 그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까 마을에서 누가 결혼할 때가 되면 말이에요, 선생님한테 결혼할 사람들의 사진 두 장을 가지고 와서 '이봐, 이거 누구를 결혼시키려고 하는데 이 상대가 어떻지 좀 봐 줘!' 합니다. 그때가 일곱, 여덟 살 때입니다. 어렸을 때지요. 그래서 보고 좋으면 그냥 두고, 안 좋으면 휙 던져 버립니다. (웃음) 던지면 그것을 재빠르게 주어 가는 거예요.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렇게 하면 나쁘다고 알고 놓아두면 좋다고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아두었던 사람은 틀림없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간판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