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집: 정성과 극복 1971년 03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4 Search Speeches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정성"- 보았느냐

원수는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는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 : 13)"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무슨 인연도 없이 목숨을 버린다면 무슨 큰 사랑이 되겠어요? 친구를 위해서 생명을 걸고, 생명 이상 정성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지옥간다…. 이렇게 사망의 고통을 자신이 느끼며 대신 죽겠다는 것이 사랑입니다. 생각지도 않으면서 죽어 주는 것이 사랑이예요? 정성을 통하지 않은 희생이라는 것은, 더구나 자기를 위해서였다면, 그것은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왜 바쳤느냐 할 때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그러면 그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렸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가 천국가기 위해서 친구를 이용해 먹는 것이 됩니다. 그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게 되면 순교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죽어야 예수와 같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이토록 귀하고 높으신 분이 나를 위해서 죽었기 때문에 나는 응당히 그분의 하나의 몸이요, 하나의 살이요, 하나의 핏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져야 되고, 그분의 삶과 더불어 부활되어야 된다. 나는 그와 더불어 하나이기 때문에 그가 걸으신 길은 내가 응당히 걸어야 할 길이다. 그가 만민을 위해 죽은 것처럼 나도 나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응당히 만민을 위해 죽는다' 이러한 생각으로 순교한 사람은 천국에 가지 말라고 해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근본 문제는 여기에서 엇갈리는 것입니다. 사랑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여기에서 엇갈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니고 어떤 축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잘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를 구해 주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그를 대신해서 정성들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생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사람, 생명을 걸고 정성들이는 사람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한 생명을 중심삼고 얼마나 정성을 들여 봤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인간 세상에 태어나 칠, 팔십 년 동안 영광스럽게 살았다고 자랑할 수 있는 외적 내용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너는 사람을 사랑했느냐 할 때 '예 했습니다','어떻게 하였느냐'할 때'이렇게 했습니다'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알고, 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끼고, 그가 흘려야 할 눈물을 내가 흘리고, 그가 당해야 할 고통을 내가 당할 때 나는 부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한 생명을 부여잡고 일년, 이년, 삼년 혹은 그 이상 몇년 동안을 정성들여 봤느냐?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사망권내에 머물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그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 땅 위에 사는 세계 인류 가운데 한 생명을 위해서 얼마만큼 정성들여 봤느냐 이거예요. 내가 그 누구를 위해 얼마만큼 이나 정성들여 봤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내가 좋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구해 주기 위해서…. 이렇게 내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 그는 영락없이 지옥에 간다는 정성어린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 봤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있어서 문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