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집: 인류의 새로운 소망 1975년 04월 30일, 한국 광주 실내체육관 Page #328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왜 위하라"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느냐

자, 그러면 여러분들 중에 '그러면 그거 좋소, 그 위하는 법도는 좋은데 그러면 하나님은 도대체…' 우리 젊은 사람들이 가만 생각하니 기분 나쁘다구,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 지금까지 자기 뱃심을 치고 눈을 똑바로 뜨고 그저 손을 악착같이 쥐고 싸워도 언제 코 떼어 가고 눈 메어 갈지 모르는 세상에 위하라고? 이거 멍청이 같은 말 하지 말라고 세상은 지금 다르다구' 할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거예요.

자, 그러면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이 왜, 어째서 위하라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하는 것을 몇 가지 요건을 들어서 말해 보자구요. 자, 여러분들한테 내가 한번 질문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자기 전체의 생명을 투입해 가지고 나에게 백 퍼센트 신세를 지운 그런 은인이 있다 하게 될 때, 그 은혜를 갚는 데에 있어서 한 오십 퍼센트는 포켓에 집어 넣고 나머지 오십 퍼센트만 갚고 싶어요. 백 퍼센트 이상 갚고 싶어요? 어떤 거예요? 전자예요. 후자예요? 후자지요? 난 후자예요.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도 후자지요?「예」 그거 나 닮았구만요. 나도 여러분 닮고 여러분도 나 닮았어요. 틀림없이 후자다 이거예요.

생명을 다한 은덕을 입게 되면 거기에 보태 주고 싶은 우리 본성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희망의 세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참사람끼리 만나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박수) 자, 내가 B라는 사람을 사랑했는데, 생명을 다해서 은공을 입혔는데 이 B라는 사람이 은공을 백 퍼센트 이상으로 갚아 온다 할 때‘ 아이구 좋다 내가 더 받았으니 흐흐 장사했군' 그래요? 본심은 말하기를 ' 내가 더 받은 고마운 것은 빚이니 더 가해 줘라' 하고 명령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백 퍼센트 은공을 입혔던 데서 백 십 퍼센트 돌아온다면 백 십 퍼센트 이상 돌려주고, 또 더해서 돌아오고 하는 이런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은 위해서 존재하는 데서만이 성립된다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영원이란 개념이 설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 여기에서 영원이란 개념이 생겨난 거예요. 여기서부터 영생, 이런 자리에서부터 영원….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라는 것은 영원해야 됩니다. 또한 그것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은 위해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박수)

그뿐만이 아니라, 영원이란 개념이 설정됨과 동시에 여기에서만이 발전이 있는 것이요. 번창이 있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 그거 알았어요? 첫째는 영원이 여기에 설정되는 것이요. 번창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위하는 데서만이.

그다음에 둘째 번이 뭐냐? 여러분 그렇잖아요?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남한테 주관 받는다면 이거 밥을 못 먹고 배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지요. 응? 그렇지요? 여기 학생들이 있구만요. 너무 그러지 말라는 거라구요. 내 말 좀 들어 보라구요. 자, 이거 주관 받기는 진짜 싫은데 만일에 '주관 해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게 어디 있어, 이게? 하고 대항하고 싶은 거라구요. 조금 기다려요. 그건 또 싫지요? 싫지만 기다리라구요.

소위 요즘에 똑똑하다는 지성인들의 클럽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구요. '우, 내가 누구한테 져? 위신, 대학교수 위신, 총장 위신고' 야단이라구요. 그게 그런 게 아니라구요.

자, 지금까지는 남한테 지배받고 주관당하는 것은 모욕이요. 실패요 억울한 것으로 알았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를 진정히 위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여 그분 앞에 주관받을 수 있는 행복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 인간은 한번도 생각을 못 했다는 거예요. (박수)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보자구요. 한 가정에 여덟 식구가 살고 있다고 예를 들어 보자구요. 그 여덟 식구 가운데에는 꼬마 동생, 나이 어린 동생이 그래도 한 20대 됐다고 말해 보자구요. 그런 동생이 있는데, 형님들도 많고 아버지 어머니도 다 있지만, 이 꼬마 동생되는 분이 그 집을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어머니 아버지 이상, 그 형님 누나 누구보다도 그 가정을 위하는 날에는 어떤 결과가 빚어지느냐 하면, 위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집안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점점 중심 자리를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구요.(박수) 덜 위하는 형님보다도, 덜 위하는 어머니보다도, 더 위하는 동생이 날이 가면 갈수록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나가 받들어 '우리 집을 인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동생밖에 없다' 하는, 중심적 존재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박수)

여기 이 광주 시장은 어떤 분이 돼야 되느냐 하면 말이예요. 누구보다도 광주시를 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저 누구보다도 밤이나 낮이나, 전체 이 광주시민을 위해서 어버이와 같이 움직이게 되면 시민들은 점점점점…. 그 사람이 시장이 되기 싫어해도 끌어다가 시장시킨다는 거예요. 그러지요? (박수) 그래요. 안 그래요?「그래요」

여러분 부모들이 자식들을 대해 가지고 갑돌이라든가 옥순이든가 '뭐 어떻고 어떻고, 야야 선한 일을 해라' '선한 일이 뭐예요. 엄마 아빠? 이렇게 물을 때 '뭐 모르긴 모르지만 남이 그저 배 고플때 밥먹여 주고 말이야, 넘어졌으면 그를 업어다 주고, 전부 다 위해라' 하는, 위해 주라는 말 하나밖에 없다구요. 그렇지요? 그러면 선하게 된다 하고 막연하게 알았어요. 구체적으로는 몰랐다는 거라구요. 이 똑똑한 젊은 청년들‘야, 그거' 성경의 그 내용을 보게 될 때, 이게 역설적 논리인 줄 알았더니, 우주의 이상적 창조 기원이 위하는 법도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어쩌면 그것 백 퍼센트 딱 들어맞아요.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한번봐 보라구요. 그걸 생각할 때, 예수는 과연 인류의 구세주임이 여러분이 지혜가 있으면 있을수록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박수)

자, 이거 또 시간이 많이 가서 갈 시간이 돼 오는구만요. 이젠 그만 둘까요. 조금 더, 결론을 내릴까요?「더 해요」 그래, 그래, 그래 할께요.

자, 그러면 위해 사는 사람은 중심존재로 등장한다는 비결을 알았어요. 여러분이 학교를 위해서 살아 봐요. 표창장도 받고 전교의 대의원도 됩니다. 그렇지요? 우주원칙의 기원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원에 기준을 맞추지 않고는 존재의 가치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사과정에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현상적 결과가 그렇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위하는 자는 중심존재가 됩니다. 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왜냐? 하나님을 닳았기 때문이예요. (박수)

우주의 대중심 되는 하나님은 창세 이후 위하는 천도를 따라 존재하는 거예요. 요즘에는 뭐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다가 '그놈의 하나님 뭐 살았나 모르지, 무슨 말을 해도 그것 있는지 없는지, 그저…' 그래도 용서해 주고, 그래도 위해 주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위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으로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일이 오래면 오랠수록 우리도 중심존재로 등장하는 이 논리적인 원칙을 이제 여러분이 알았어요. 그러니 부디 그렇게 살아 보라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위해 사는 사람 앞에 주관을 받는 그 이상의 행복이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위해 사는 사람 앞에 주관받아 보라구요. 여러분,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일하게 되면, 아내는 그저 몸 둘 곳을 모르고 그저 ' 밥 가져와' 할 때, 그저 밥 가져오고 물 먹고 싶어할 것 같아 물 가져오라는 소리를 안 해도 물 가져다 주고, 그렇지요? 그렇다구요. 난 여자가 아니라 경험하지 못했지만 난 그렇다고 알고 있다구요. 자, 이렇게 위해 사는 사람 앞에 완전히 주관받을 수 있는 이 행복이 얼마나 놀랍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위해서 사는 우주의 중심존재이므로 그 앞에 가까이 가면 천년 만년 주관받더라도 더 주관받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모심의 도리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인간도 그러한 자리에서 주관받을 수 있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또 다음 세째 이유는, 왜 하나님이 위해서 살라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수 없었느냐는 것입니다. 얘기해 보자구요. 오늘날 남자나 여자들, 지금까지 잘났다는 사람들이 소위 생각하기를 '사랑 하면 내 사랑, 이상 하게 되면 내 이상' 이렇게 생각해 왔어요. 그렇지만 그게 아니예요. 사랑은 혼자 얻어지는 법이 없어요. 이상은 혼자서 이룰 수 없어요. 상대적 관계에서 얻어지는 거예요. 사랑이 나로부터 찾아지는 게 아니예요. 이상이 나로부터 찾아지는 것이 아니예요. 생명보다도 귀한 그 사랑과 이상이 어디서 오느냐 하면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이 고귀한 것을 받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위할 수 있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는 도리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기를 바랍니다. (박수)

이제는 여러분들에게 많이 이해됐으리라 봅니다. '아 그렇구만…' 이눈이 생겨나기를 눈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예요. 상대를 위해서예요. 귀가 귀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예요. 전부가…. 코가 코 때문에 생겨나지 않았어요. 입이 입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예요. 상대 때문에 생겨났어요. 팔이 팔 때문에 생겨났어요? 남을 위해서예요. 전부 그렇게 돼 있다구요. 자, 이제 그만큼 했으면 아시리라 봅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제는 넘어가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