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집: 나의 뜻과 신념 1969년 02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5 Search Speeches

심정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늘의 초석이 "-진다

여러분들은 겉으로 나타난 통일교회를 보고 믿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외부로만 발전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우리가 본보기가 되어 서로서로 심정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여 동감 동정할 수 있는 일체가 되어야 그것을 중심삼고 하늘의 초석이 놓여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의 초석이 세워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렇게 몰아치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1960년까지 노력해 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은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을 잊어버리고 온갖 정성을 들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천신만고 끝에 찾아 놓은 영계의 모든 비밀과 모든 내용은 보화중의 보화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함께 나눌 수 없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한스러웠겠습니까?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어머니를 뒤에 두고 나설 때에 눈물을 머금고 마음속으로 `어머님, 이제 이 집을 떠나면 다시 만나 뵐 수 없는 길로 가게 됨을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어머님과 헤어졌는데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찾아오셔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어머니께 위로의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어머니께 `졸장부 아들을 낳은 어머니가 되지 말고 대장부를 낳은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청천벽력 같은 호령을 하여 눈물을 그치게 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선생님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계의 수많은 선한 영인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어머니의 가치를 천배 만배 더하여 바라보고 있는데, 일대의 혈육의 인연을 중심삼고 눈물지음으로 인하여 그 권위와 가치가 상실될 것을 염려하여 선생님은 무자비하게 어머니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처자식을 대해서도 자기 심중에 품은 말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나이가 바로 통일교회 문선명선생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선생님은 하나님의 이 엄청난 뜻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를 붙들고, 형님 누나를 붙들고, 처자를 붙들고 사정을 나누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뜻을 위해서 룩색(Rucksack;배낭)을 메고 처자를 떠나 눈물을 흘리며 이북으로 향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때 나는 친척들이 나를 원망할 것이요, 친지들이 원망할 것이요, 처자가 나를 원망하면서 눈물 흘릴 것을 알고 돌아서서 눈물 흘리며 대한민국을 이별했습니다. 그때 나는 `오냐, 6천년 섭리역사가 이렇듯 슬픔의 역사로 남아져 온 것을 알았으니, 그 해원을 위해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리하여 다 싫다는 이북땅을 향하여 떠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방을 그리워하면서 통곡하며 절규하던 그 사나이가 해방된 이 땅 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녘땅을 향하여 발걸음을 돌이키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남아져 달라'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삼팔선을 넘어설 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했던 사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하나도 죽지 말고, 하나도 망하지 말고, 하나도 배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동지들과 신도들에게 부탁을 했지만 선생님이 가고 난 후에는 모두 선생님을 원망했고,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남한땅에 다시 돌아 왔을 때 선생님을 원망하고 배반했던 그 무리들에게 아직도 하늘의 슬픈 역사의 사연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연을 나누고자 찾아갔습니다. 그때는 명주바지가 누더기가 되어서 선생님이 보기에도 형편없는 거지 중의 상거지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