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집: 길 1974년 06월 30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247 Search Speeches

어려운 길도 기쁘게 동참해야 한식구

오늘 아침에 우리 효진이가 자는 것을 깨웠더니 이러고, (행동으로 표현하심) 차 안에서도 이러는 것을 봤습니다. (웃음) 이래서 '너, 내 아들로 태어나기를 잘했어?'라는 말을 했다구요. 그래선 안 된다구요. 철이 없으니까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어때요? 아이구, 여섯 시, 여섯 시에 했으면 좋겠다…. (웃음. 판서하심) 그래서 여섯 시에 하면 '일곱 시에 했으면 좋겠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일곱 시에 하면 여덟 시에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덟 시가 지나고 아홉 시에 하면 또 불평하고, 아홉 시에 하면 또 불평합니다. 열 시에 해도 불평하고, 열한 시에도 해도 또 불평합니다. 열두 시에 해도 또 불평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십 사 시간을 다 잃어버린다구요. 불평하는 사람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웃음)

불평으로는 모든 것을 관용하고 소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게 되면 일곱 시라도 좋고, 여덟 시면 더 좋고, 아홉 시면 더 좋고, 열 시라면 더 좋고, 점점 더 좋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결정, 마음의 방향에 따라서 모든 것이 좌우된다는 것을 여기에서 자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팔자가 좋았든 나빴든간에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구요. 그러니 좋은 것이 아니면 나쁜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예요. 틀림없이 여러분은 다들 좋아서 만난 거라구요. 그래요?「예」 그러면, 좋아서 만나 가지고 '만날 때까지만 필요하지, 만난 다음에는 나 싫어! 그게 뭐야? 하는 건 있을 수 없다구요. 그것은 안 만난 것보다도 못하다는 거예요.

만나서는 무얼 하느냐? 여기서 만났으니 다 됐다고 하면서 앉아야 되겠느냐 말예요? 또 무엇을 해야지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났으면 선생님이 가야 할 곳을 선생님과 더불어 같이 가는 데에서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치가 거기서…. 여러분이 선생님과 같이 가서 하나님을 만나서 '만났으면 됐다' 그래선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가시는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을 만나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장면에서 위로를 받고, 기쁠 수 있는 자리에서 찬양받을 수 있는 곡절을 많이 느끼면 느낄수록 그는 영원히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론이라구요.

그 하나님의 일이 선생님의 일이요, 선생님의 일이 여러분의 일이요, 이 일이 내 일이자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고,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교회에 좋지 못한 일이 있으면 가슴이 철렁하는 마음을 느껴야 됩니다. 그래야 그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고, 주인의 마음을 닮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부모와 더불어 가슴이 철렁할 수 있고, 부모가 밥을 못 먹고 밤을 새워 가면서 고민하면 여러분도 밥을 못 먹고 고민하고…. 동감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자의 관계, 한식구라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 있을 때 '그것 보라구. 그것 보라구' 하면서 불평하는 사람은 이웃 사람은 될 수 있지만 집안 식구는 아닌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가야 할 길에 언제든지 어렵더라도 기쁨으로 동참해야 되고 슬프더라도 기쁘게 같이 동참해 가지 않으면 식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